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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프렌들리' 정책에 쓰러지는 중소기업

[재경일보 배규정 기자] -공격적 사세확장, 계열사 수 32개 사업종류 8가지 증가

유통공룡 '롯데그룹'이 4년만에 이룬 사세 확장의 쾌거다.

롯데는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대기업 프렌들리 정책에 힘입어 46개이던 계열사 수를 78개까지 늘렸다. 사업종류도 8종이 늘어난 31가지나 된다.

지난해 설립된 롯데몰 김포공항점을 보면 롯데의 사세 확장 방식을 알 수 있다.

롯데가 운영하는 이 종합쇼핑몰의 모든 업체는 '롯데 계열사'로 채워져 있다.

시공은 '롯데건설'이 맡았고, 기획은 '롯데자산개발', 광고는 '대홍기획'이 맡았다. 대홍기획은 롯데에서 운영하는 계열사 광고회사로 주로 롯데와 관련된 광고를 제작한다.

또 이 안에는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가 입점해 있다. '롯데유통'이 이들을 총괄한다. 쇼핑몰 내에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입점해 있다. 롯데쇼핑이 1994년 인수해 현재까지 계열사인 코리아세븐이 맡고 있다. 건물 안에는 '롯데호텔'과 '롯데시네마'도 입점해 있다.

푸드코트 코너에는 커피전문점 ‘엔제리너스’, 패밀리레스토랑 ‘T.G.I Friday’, 도넛전문점 ‘크리스피크림도넛’, 햄버거 가게 ‘롯데리아,’ 아이스크림 전문점 ‘나뚜루’등이 있다. 이들 모두 롯데 브랜드다.

또 입점해 있는 의류업체인 ‘유니클로’는 롯데쇼핑이 49%지분을 투자해 설립한 자회사 ‘FRL코리아’가 한국내 영업을 담당한다.

‘자라(ZARA)’브랜드도 스페인 인데텍스사에 20%를 출자해 합작법인인 ‘자라리테일코리아’를 통해 운영중이다. 미국 아동복 ‘짐보리’도 롯데백화점이 국내 영업권을 가지고 있다. 생활용품점 ‘무인양품’ 역시 롯데가 2004년 일본 회사와 합작한 곳이다.

이들 자리에 중소기업이 들어갈 자리는 애초에 없어 보인다.

-대기업 시장 공략에 중소기업 맥없이 나가 떨어져

지난 2010년 광주지역 향토 유통업체인 '빅마트'가 최종 부도처리됐다.

'빅마트'는 1995년 광주 진월동에 창고형 할인매장을 개점해 5년만에 매출액 순위 국내 유통업체 15위로 급성장한 중견기업이었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유통시장 공략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2010년 최종 부도처리됐다. 빅마트는 롯데쇼핑이 인수했다.

이 지역 주민인 권모(여·54) 씨는 "지역민과 함께한 15년 향토기업이 무너졌다"며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광주지역 한 업계관계자는 "빅마트는 지역 내 처음으로 아름다운가게 입점, 온라인 매체 ‘전라도닷컴’ 운영 등 해마다 영업 이익의 10% 이상을 지역에 환원하면서 향토기업의 모델을 만들어 왔는데 지역상권이 대기업에 다 흡수돼 버렸다"고 한숨 섞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또한 지난달 31일 30년간 홍대입구에서 한결같이 빵을 구워 팔던 리치몬드과자점이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했다. 건물주가 "롯데그룹 계열사와 계약했으니 가게를 비워달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 곳에는 롯데의 '엔제리너스' 커피 전문점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제과점은 대한민국에 8명뿐인 제과제빵 명장 중 1명인 권상범 명장이 운영해 오던 역사와 전통이 있던 곳이어서 시민들의 안타까움은 더했다.

한 시민은 "꼭 여기가 아니라도 장사 할 곳은 많은데 추억과 역사가 깃든 명소를 대기업의 횡포로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슬프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시민들은 대체적으로 대형 프랜차이즈 진츨로 골목상권이 사라졌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롯데측은 "홍대쪽에 진출 하기 위해 매장을 알아 보던 중 부동산을 통해 매물이 있다는 소식을 접해 계약을 했을 뿐"이라며 "일부러 제과점을 밀어낸 것은 아니라고"해명한 바 있다.

한편 리치몬드과자점이 폐점하던 날인 31일 소식을 듣고 달려온 단골손님들로 가게는 북적였다. 이날 평균 고객수의 4배인 약 2500명 가량이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 프랜들리 정책에 양극화 심화 대기업 몸집 거대화

중소기업들은 사업영역을 대기업이 심각하게 침범하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중소기업이 자본력과 계열사 지원을 등에 업고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보유한 대기업을 상대하기란 실질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최근 재벌 관련 규제에 대한 논의가 뜨겁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기업 인수·합병이나 신규회사 설립, 지분 취득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지난달 재벌닷컴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자산규모 상위 30대 재벌그룹(공기업 제외)은 2009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442개 회사를 계열사로 새로 편입했다. 같은 기간 이들의 전체 계열사 수는 975개에서 1천150개로 불어났다.

특히, 30대 재벌그룹은 회사를 새로 설립하기보다 다른 회사를 통째로 사들이거나 지분을 대규모로 취득해 경영권을 장악하는 M&A 방식을 선호했다.

신규 편입 계열사 중 절반에 가까운 211개 회사(47.7%)가 M&A를 통해 재벌그룹에 속하게 됐다.

CJ는 신규 편입한 39개 계열사 가운데 30개사를 M&A로 인수했다. 롯데는 새 계열사 35개 중 21개, GS는 26개 중 16개, LS는 21개 중 16개를 각각 인수했다.

30대 재벌기업의 M&A 건수는 2009년 40개, 2010년 77개, 2011년 94개로 매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시간과 비용을 아껴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기업들은 M&A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CJ그룹 관계자는 "우리 그룹 사업군은 식품ㆍ식품서비스, 생명공학, 엔터테인먼트ㆍ미디어, 신유통 등 크게 4개가 있다"면서 "핵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각 사업군에 적합한 기업들을 인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각 그룹의 M&A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력 사업과 동떨어진 경우도 상당수 있다.

게다가 부동산 임대, 유통업 등 큰 투자를 하지 않고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업종에 치우치는 경향도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2009년 1월 축산업 등을 영위하는 서림개발을 인수했다. 효성은 2010년 6월 부동산 임대업체인 오양공예물산을, SK는 같은 달 수면용품 제조업체인 한국수면네트워크를 각각 계열사로 편입했다.

CJ는 지난해 3월 주거용 부동산 관리업체 명성기업을 인수했다.

시너지를 강조하지만, 업종만 놓고보면 연관성이 낮은 사례를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산업연구원 주현 중소벤처기업연구실장은 "중소기업 M&A를 상속의 수단으로 삼거나 시너지를 고려하지 않고 기존 사업과 무관한 업종을 무턱대고 M&A 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전문가는 M&A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고 대기업의 M&A도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지만 `손쉬운 돈벌이'로 인식하거나 중소기업 사업영역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경우는 경계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이때 폐해를 차단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