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안진석 기자]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논의와 관련, 재벌을 과도하게 규제하면 외국의 경쟁기업들이 혜택을 보는 등 지나칠 경우 국내 대기업이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장관은 지난 9일 여수엑스포를 참관한 뒤 기자들과 만나 최근의 경제민주화 논란에 대해 "정책은 세계 표준과 맞아야 한다"며 "우리처럼 외교·통상이 중요한 나라는 글로벌스탠더드(국제표준)를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각 경제주체의 조화로운 발전을 경제민주화라고 하는 것 같다. 경제민주화나 시장경제 등의 총론을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라면서도 지나치면 외국인 투자 저해와 무역장벽 등의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감 몰아주기 과세까지는 용인되지만 이보다 더 나아간 조치를 하면 다른 나라에서 누가 용납하겠나. 무역으로 먹고살면서 북한식으로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할 수는 없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우리는 외곬이 아니라는 걸 (국제사회에) 분명히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벌 규제론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재벌을 규제하면 외국 기업만 혜택을 본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상대국에선 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총력전을 하는데 우리는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경쟁에서 질 수도 있다"며 "재벌 기업이 규제를 받으면 중견·중소기업이 대체해줘야 하는데 외국기업이 들어와 혜택을 받는다"고 우려했다.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을 하고 난 뒤부터 외국계 마트가 이익을 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라고 반문했다.
박 장관은 "재벌기업이 (외국으로) 나가버리면 카타르시스를 느낄지는 몰라도 남는 게 없다. 우리 경제 전체를 멀리 내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 책정과 관련해서는 해당 공기업의 철저한 자구노력이 선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장관은 "공공요금은 인상요인이 있어도 철저한 자구노력을 전제로 인상 폭을 최소화하고, 요금을 한꺼번에 올릴 때 서민생활에 미치는 충격을 고려해 인상시기도 분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전력이 9일 이사회에서 전기요금의 10.7% 인상안을 의결한 것에 대해선 "정부는 현실화 요인이 있어도 한꺼번에 다 하는 것은 충격이 있지 않으냐는 입장"이라면서 급격한 요금 인상은 허용하지 않을 방침임을 시사했다.
종교인 과세와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 확대 계획도 밝혔다.
그는 "사실상 지배주주, 비상장주식 등에 과세해온 지 꽤 됐는데, 이제 자본이득에 대해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과세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생상품거래세 도입과 관련해선 "과세한다면 시범적인 측면에서 해보고 연착륙이 되는지 살펴보겠다"며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종교인 과세에 대해선 "현행법으로도 과세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동안 적극적으로 과세하지 않았던 관행이 있었으므로 갑자기 과세하는 것은 부담이 있다"며 "이런 점을 고려해 연착륙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무상보육에 대해선 "지자체마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마치는 시기가 달라 조율하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7월 안에 끝내겠다"고 말했다.
직장인의 연가제도에 대해선 '휴가 차월제'를 제안했다. 휴가 차월제는 미래에 발생할 휴가를 올해 앞당겨서 쓰는 것으로 아직 이를 도입한 나라는 없다.
박 장관은 "선진국에는 올해 열심히 일하고 휴가 일수를 적립해뒀다가 몇 년 뒤에 모인 휴가를 한꺼번에 쓰는 '휴가 이월제'가 있다. 3년쯤 휴가를 모았다가 4년차에 1달짜리 휴가를 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올해 휴가를 내년에 몰아 쓰고, 더욱 선진화해서 내년에 쓸 휴가를 앞당겨서 쓰게 되면 (직장인들이) 출산 계획을 세우기도 쉽고 시간을 짜임새 있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