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경제민주화 관련 `순환출자 금지' 대선 쟁점 급부상

[재경일보 김영은 기자] 여야가 대선 핵심의제로 '경제민주화'를 제시한 가운데 가장 먼저 대기업 순환출자 금지 문제가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0일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신규 순환출자를 규제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순환출자 규제는 재벌 기업지배의 핵심으로, 삼성, 현대차, 한진 등 주요 15개 대기업집단이 적용대상이어서 규제 강도에 따라 `재벌해체'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큰 파문을 가져올 수도 있다.

박 전 비대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기가 투자한 것 이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불합리한 면이 있다"며 "기존에 순환출자된 부분은 현실성을 감안할 때 기업판단에 맡기더라도 신규로 하는 부분은 규제가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강조해오며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불리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까지 공동선대위원장의 자리에 앉혔지만 순환출자를 비롯한 `각론'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내놓지 않았던 박 전 위원장이 재벌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직접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쇄신파인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을 중심으로만 논의되었을 뿐 재벌의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 건드리는 것을 사실상 금기시했던 당내에서도 이번 박 전 비대위원장의 발언을 계기로 공정경쟁 차원을 넘어 재벌개혁으로까지 경제민주화 논의 범위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계속해서 재벌개혁을 주창해온 친박계 이혜훈 최고위원은 "지분의 몇 배에 해당하는 가공의 의결권으로 엄청난 지배력을 행사하는 관행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며 "신규 순환출자 규제는 기존 기업의 지배구조 행태를 바꾸는 데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계의 한 경제통 의원은 "대선공약에서 재벌 지배구조 이슈도 배제하지 않고 함께 논의해보겠다는 취지가 아니겠느냐"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민주통합당은 `면피성이자 재벌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박 전 비대위원장이 제시한 수준으로는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 효과가 미미해 기존 순환출자도 완전히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전 위원장보다 강도높은 재벌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것.

참여연대 출신의 김기식 의원은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는 이미 형성돼 있기 때문에 신규 순환출자 금지 방안은 예방적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현재 대기업집단에는 아무런 타격이 없다"며 "박 전 비대위원장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알맹이없는 레토릭에 불과함을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순환출자가 소수지분을 가진 재벌 총수가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만큼 현재 대기업집단까지 포함해 순환출자를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앞으로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것은 물론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는 기존 대기업집단도 3년 간 유예기간을 줘 순환출자를 해소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또 유예기간이 경과한 뒤에도 해소되지 않는 순환출자 분은 의결권을 제한하는 안을 마련했다.

여기에다 10대 대기업집단의 경우 출자총액을 순자산의 30%로 제한하고 이미 이를 초과한 대기업집단은 3년 내에 이를 해소하도록 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도 재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이번에 순환출자 금지를 시발점으로 해서 출총제 부활, 금산분리(산업자본의 금융사 보유지분 제한) 강화, 지주회사 규제 강화 등 재벌개혁 방안을 본격적인 논의의 테이블에 올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주당이 재벌해체에 가까울 정도로 강도 높은 재벌개혁을 추구하고 있는 반면, 새누리당은 재벌죽이기로 나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어서 수위를 놓고 공방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