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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볼라벤 한반도 강타] "사망·실종 25명"

[재경일보 김시내 기자] 초강력 태풍인 제15호 태풍 `볼라벤'이 28일 한반도를 강타, 중국 어선 2척이 좌초해 중국 선원 15명이 숨지거나 실종되고 내국인 10여명도 나무 등에 깔려 숨지는 등 전국에서 인명 피해가 속출했다.

해안 지방의 양식장과 과수원, 농경지 등이 강풍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고, 대형 마트와 주택, 주차타워 등 건축물도 큰 피해를 보는 등 재산 피해도 속출했다.

2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40분께 서귀포시 화순항 동방파제 남동쪽 1.8㎞ 지점에 떠있던 월강성어 91104호와 91105호(이상 산둥성 웨이하이시 선적·톤수 미상)가 강풍과 높은 파도로 전복돼 선원 33명 중 5명이 숨지고 10명이 실종됐다. 나머지 18명은 구조됐다.

이날 낮 12시 13분께 광주 서구 유덕동의 한 도로에서 임모(89) 씨가 벽돌 더미와 쓰러지는 교회 종탑에 깔려 숨지고, 오전 10시 20분께는 전북 임실군 성수면 신촌리 한 국도에서 5t 화물트럭을 운전하던 범모(50) 씨가 강풍으로 인해 쓰러진 나무를 치우려다 또 다른 나무에 깔려 숨졌다.

또 오전 11시 10분께는 완주군 삼례읍 W아파트 주차장에서 경비원 박모(48)씨가 강풍에 날아온 컨테이너 박스에 깔려 숨졌고, 경남 남해군 서면 중련리에서도 정모(80) 씨가 강풍에 무너진 옆집 가건물 더미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지금까지 태풍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중국 선원 15명 사망·실종과 내국인 사망 10명 등 모두 25명으로 잠정 집계됐으나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오전 9시37분께 경기 안산에서는 피혁공장 직원 선모(38)씨가 강풍에 날린 천막 지붕에 다리를 맞아 왼쪽 발목이 부러졌다.

오전 10시께 서울 성동구 용답동에선 길을 가던 윤모씨가 강풍으로 떨어진 간판에 머리를 맞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대구 달서구 도원동 모 아파트 단지 부근에서는 태풍에 가로수가 넘어지면서 등교하던 고교생 이모(18) 양 등 2명이 다치는 등 전국 곳곳에서 인명피해가 이어졌다.

강풍으로 인해 주택이 파손된 탓에 이재민도 54명이 발생했다.

전남과 제주에서 주택 16동이 파손되고 5동이 침수됐다. 강진 1가구, 해남 9가구, 영암 1가구 완도 1가구, 진도 2가구, 제주 4가구, 서귀포 3가구 등 모두 21가구에서 54명의 이재민이 발생해 마을회관이나 친척집 등으로 긴급 대피했으며, 제주와 광주, 경남 등에서는 교통신호기 및 가로등 파손도 이어졌다.

태풍으로 인한 정전 피해도 잇따랐다.

초속 50m 안팎의 거센 바람에 전선이 끊어지면서 서울, 경기, 인천, 충남, 전남, 제주, 경남 등 전국 131만여 가구와 주요 산업단지에 전기 공급이 중단되는 등 정전 피해가 발생했다.

서울에선 태풍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어가기 전인 오전 8시20분쯤 지하철 1호선 열차가 갑자기 멈춰 섰고, 오전 9시쯤 송파구 삼전동 주택가 일대 3000여 가구에 전기 공급이 중단되는 등 강풍으로 인한 피해가 속속 나타났다.

강한 바람에 고압선이 끊어진 데다 변압기도 고장을 일으켜 정전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 당국에 따르면 제주(2만2166호), 광주·전남(16만1932호), 전북(5615호), 대전·충남(4972호), 경남(2049호), 충북(1017호) 지역 등에 전기가 끊겨 모두 43만7453가구가 정전됐다. 한전은 비상근무 인력을 투입해 87%에 해당하는 38만3526가구에 전력 공급을 재개한 상태다.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는 공장 지붕이 날아가거나 순간 정전이 발생해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산단 내 한전 변압기 파손으로 인해 이날 오전 6시 55분께 1~2초 정도의 순간정전이 발생하며 LG화학, 한화케미칼, 대림산업, 금호석유화학, 여천NCC, 호남석유화학 등 15곳의 조업이 일시 중단돼 생산 차질이 불기피할 정망이다.

파도가 둑을 넘는 이른바 `월파(越波)' 피해도 이어졌다.

27일 오후 7시40분께 서귀포시 송산동 자구리 하수펌프장 인근 주택이 침수돼 2명이 노인회관으로 대피했으며,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수마포구 인근 주택 등 10여 채가 침수됐다.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와 만재도에서는 통신이 두절되며 일반전화와 휴대전화 통화가 끊겨 태풍 피해 상황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경남 사천시 신수도 연안 수심 5∼12m 해안가에서는 이날 오전 개펄 위에 좌초한 제주 선적 7만7458t급 석탄 운반선이 두 동강 나면서 선수와 선미 부분으로 분리됐다. 사고 상선은 인근 해상에 정박 중이었으나 오전 6시께 파도와 강풍에 닻이 풀리면서 연안으로 떼밀려왔다.

강풍으로 인해 지붕이나 주차타워, 축사가 무너지고 교통신호기와 가로등, 가로수가 쓰러지거나 뽑히는 사고도 전국적으로 발생했다.

태풍은 천연기념물도 비켜가지 않아 속리산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03호)의 가지가 부러지고, 충북 괴산 `왕소나무(王松·일명 용송龍松·천연기념물 제290호)'도 뿌리가 뽑힌채 쓰러졌다.

국보와 보물급 문화재에도 상처를 남겼다.

볼라벤의 강풍으로 인해 이날 오전 국보 67호인 구례 화엄사 각황전 기와 일부가 파손됐으며, 오전 보물 396호인 여수 흥국사 대웅전 용마루(기와) 일부도 파손됐다.

양식장, 과수원, 농경지의 피해도 심각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현재 농경지 피해는 과수 1915㏊, 벼 848㏊, 밭 52㏊ 등 농경지 2815㏊에 달한다고 밝혔다.

과수 피해는 배 1053㏊, 사과 862㏊다. 벼는 도복(쓰러짐) 피해가 529㏊, 침수 피해가 319㏊다.

지역별로는 전북 1284㏊, 전남 1112㏊, 경남 317㏊, 경북 102㏊ 순이다.

시설물은 경남, 전남,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비닐하우스 120개 동, 축사 13개 동, 버섯 재배시설 1개 동이 파손됐다. 배수장 35곳은 정전으로 가동을 중단했다.

강풍은 주요 양식장에도 영향을 미쳐 완도 등 서남해안 지역의 양식장이 거의 초토화됐다. 강풍 피해를 본 완도의 양식장은 10곳에 달하며 상당수 양봉 농가도 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하늘길과 뱃길 운항이 끊기고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와 송도 국제신도시를 연결하는 인천대교 통행도 전면 통제되는 등 교통 통제도 잇따랐다.

이날 오후 5시 현재 김포와 제주 등 국내선 77편, 국제선 117편 등 모두 194편이 결항됐다.

해상의 강풍과 높은 파도로 27일 오전 제주와 다른 지역을 잇는 여객선과 제주 부속섬을 연결하는 배편 운항이 모두 중단됐다.

제주의 항공편도 전날 오후 3시부터 전면 결항되는 등 제주는 뱃길과 하늘길이 모두 막혀 있는 상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태풍 피해가 우려돼 제주 산방로와 섭지코지, 표선, 법환, 칼호텔 주변 해안도로 등 12개 구간, 목포·완도·여수·통영·제주 등지로 연결되는 96개 항로의 여객선 171척을 통제했다.

기타 서해 5도 등 서해상 섬과 내륙을 연결하는 주요 뱃길도 거의 운항이 끊긴 상태이다.

한편, 이날 오전 9시를 기해 서울과 경기, 인천 지역에 태풍경보가 내려지며 수도권 지역이 한때 긴장했으나 볼라벤이 오후 들어 서해를 지나 북한쪽으로 방향을 잡음에 따라 수도권에서는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