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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 상장사 1000개선 무너지나… 경기불황에다 횡령·투기·작전 등 기승

[재경일보 양준식 기자] 경기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횡령·투기·작전세력이 기승을 부리면서 코스닥 시장의 신뢰성이 크게 흔들려 코스닥 시장의 상장사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특히 주기적으로 터져나오는 `작전'이나 주가조작, 분식회계, 내부자거래 사건으로 인해 `큰 손'인 기관과 외국인이 코스닥 시장을 외면하고 있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코스닥 상장사 1000개 돌파 5년만에 1000개선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08년 이후 코스닥 지수가 500선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상장기업마저 줄어들면 시장 본연의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코스닥 시장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위주여서 한국의 잠재성장력에 해당되기 때문에 한국이 미래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1일 현재 코스닥 시장 상장기업은 111개사로 작년말(1031개)보다 20개 감소했고 상장종목 수도 1016개로 20개 줄어드는 등 2007년 처음 1000개를 돌파한 이래 5년째 1030개 내외를 유지하던 추세가 깨졌다.

이는 시장 퇴출 기업이 늘었다기 보다는 코스닥 상장을 시도하는 기업의 수가 감소한 결과다.

거래소에 따르면, 올해초부터 9월11일 사이 코스닥 시장에 신규상장 또는 재상장된 기업의 수는 13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35개)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코스닥 상장절차를 밟는 기업 수도 반토막이 났다.

올해 들어 코스닥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한 기업은 32개로 작년 같은 기간 청구기업 수(69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신성장동력기업'의 예비심사 청구도 작년 3건이었던 것이 올해는 1건도 없었다.

한국거래소 정운수 코스닥시장본부장은 "증시침체 영향 때문에 제 가격을 받지 못할 가능성을 우려한 기업들이 상장을 미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되는 기업의 수는 여전히 많다.

거래소에 따르면, 올들어 지금까지 상장폐지된 코스닥 기업의 수는 33개로 작년 같은 기간(37개)에 비해 비슷했다.

특히 2분기에 상장폐지된 기업이 20개에 달했고 3분기 상장폐지 기업수는 11일 현재 7개로 계속해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9월 들어서만 엔케이바이오, 어울림정보, 어울림엘시스, 동양텔레콤 등 4개 기업이 잇따라 시장에서 퇴출됐다.

또 현재 자본잠식률 50% 이상, 자기자본 10억원 미만 등 사유로 관리종목 상태인 기업은 34개사에 달하며, 이중 8개사는 이미 상장폐지사유가 발생했다.

따라서 지금의 추세가 계속될 경우 올해 안에 코스닥 상장사 1천개 선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화투자증권 최석원 리서치센터장은 "글로벌 불황이 지속될 것"이라면서 "중국과 유럽의 수요가 위축된 후폭풍을 우리 기업이 겪고 있는데 빠른 회복이 어려워지면 코스닥 상장사수가 1천개 밑으로 충분히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거래소, 코스닥 살리기 나섰지만

코스닥시장 부진이 지속되자 한국거래소가 `시장 살리기'에 나섰지만 결실을 얻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는 지난 6월에 첨단기술주를 상장·유치해 코스닥시장을 재정립하겠다는 방안을 내놨지만, 코스닥시장에서 이탈하는 우량기업을 막지 못하면 위상 재정립이 어렵다는 것이 시장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자본시장연구원 김준석 연구원은 "현재 코스닥시장에서는 기업들이 몸집을 불린 뒤 유가증권시장으로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MS)·페이스북이 상장된 미국 나스닥을 예로 들며 "코스닥 시장이 성장하려면 우량기업이 상장되고, 그 기업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코스닥시장은 지난 2008년 `대장주'였던 NHN이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하면서 실제로 크게 동요한 바 있다.

코스닥시장에 상장을 했었던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중공업, 기업은행, 강원랜드, 엔씨소프트, LG유플러스, 하나투어 등은 등은 현재 한국 증시를 대표하는 코스피200지수에 속해 있다.

코스닥 상장업체 관계자는 "코스닥시장을 첨단기술주 중심으로 육성하겠다는 거래소 방침에 동의하지만 문제는 '코스닥 디스카운트'를 무시할 수 없어 시장에 진입하려는 대형 IT기업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상장업체 관계자는 "코스닥시장 위상을 재정립하고 투자자를 끌어들여야 하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면서 유가증권시장과 분리해 경쟁시키는 등의 `파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횡령·투기·작전 등 신뢰 상실이 더 큰 문제

특히 코스닥 시장은 내부자 거래와 최대주자나 임직원의 횡령·배임 등이 발생하고 있는데다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각종 테마주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6일 디오텍에서는 과장급 직원이 이 회사 자기자본의 10.44%에 달하는 43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나 하루아침에 상장폐지 위기에 처했다.

올해 엔케이바이오, 파나진, 씨앤에스테크놀로지, 휴바이론, 보광티에스 등도 임직원의 횡령·배임 혐의라는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곳이다.

최근에는 한국거래소 직원에 의한 공시정보 유출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달 말 한국거래소 시장운영팀의 한 직원이 코스닥 상장기업의 중요 공시 정보를 외부로 유출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은 코스닥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하는 한국거래소에서 정보유출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여기에다 본격적 대선정국에 돌입하면서 실적과 상관없이 정치 이슈에 따라 주가가 급등락을 반복하는 각종 정치 테마주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조회공시 요구를 받은 정치 테마주 9종의 주가 상승률은 무려 102.5%로 나타났는데 이 가운데 5종이 코스닥 종목이었다.

불공정 거래 문제 외에도 코스닥 시장이 자금조달 통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중소벤처기업들이 상장을 꺼린다는 지적도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양옥석 재정금융부장은 "외국인과 기관투자자가 많은 코스닥 시장과는 달리 개인 투자자 중심의 코스피 시장은 등락폭이 크고 장세가 불안해 안정적 자금조달이 어렵다"면서 "코스닥에 상장하느니 아예 몸집을 키워 코스피로 바로 가겠다는 기업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