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역사<49>
라이덴 대학 식물원 전경. |
16세기, 스페인의 통치 아래 있던 네덜란드는 남부 지역인 Leuven에는 대학이 있었으나 북부에는 대학이 없었다. 그러던중 북부 7개 주가 스페인에 반기를 들고 독립전쟁을 시작하였다. 이에 스페인은 1573년과 1574년에 두 번에 걸쳐 대군을 파견하여 북부지역의 라이덴(Leiden) 시(市)를 포위하고 공격하였다. 이에 네덜란드의 애국자로서 스페인을 상대로 80년 독립전쟁을 지도한 오렌지 공(公) 윌리암의 지도 아래 라이덴 시민은 스페인 군대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그러나 라이덴 시민은 장기간 전투로 말미암아 굶주림에 지쳤고 도시는 크게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라이덴 시민은 오렌지 공에게 식량이나 가옥을 달라고 하지 않고 라이덴 시에 대학을 세워달라고 요청하여 1575년에 라이덴에 대학이 설립되었다. 이것이 북부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라이덴 대학이다.
라이덴 대학은 ‘국제법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법학자 그로티우스, 근대 유화(油畵)의 완성자인 램브란트 같은 화가를 포함하여 현대에 들어서는 노벨 수상자 여러 명을 배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학자와 사회 지도자를 배출하였다.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도 이 대학 출신이며 현재 네덜란드의 베아트릭스(Beatrix) 여왕도 이 대학교 출신이다. 오늘날 유럽 최고 명문 대학 가운데 하나인 이 대학의 도서관은 350만권 이상의 장서와 5만권의 저널을 소장하고 있다.
대학이 설립되고 나서 12년이 지난 1587년,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약초(藥草)에 대해 공부할 수 있도록, 라이덴 대학은 식물원 설치 계획을 세우다가 1593년, 라이덴에 도착한 식물학자인 클루시우스(Carolus Clusius)를 대학에 받아들인 뒤 그에게 식물표본실(Hortus Botanicus))을 만드는 일을 맡겼다.
이에 클루시우스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로서 세계를 상대로 무역을 하던 ‘화란(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에 전세계 식물을 채집해 달라고 협조를 부탁하였다. 이렇게 VOC의 도움을 받아 클로시우스는 가로 40m, 세로 35m 의 조그만 식물원(식물표본실)을 대학 구내에 만들고 여기에 아프리카, 아시아를 비롯하여 전세계에서 가져 온 1,000여종의 식물을 심었다. 그는 튤립 꽃을 이곳에서 처음으로 재배하기 시작하여 그 뒤 이 꽃은 네덜란드의 상징이 되었다.
클로시우스가 대학을 떠난 뒤에도 인도,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온 식물들은 클로시우스의 후임자들에 의해 계속 이곳에 식재되었다. 후임자 가운데 한명인 보어하브(Herman Boerhaave)는 새로운 식물을 구해서 식재하였을 뿐만 아니라 라이덴 대학 식물원에 대한 소개책자도 만들었다. VOC에 고용되어 1823년부터 1829년까지 일본에서 근무하였던 독일인 내과의사 시볼트(Philipp Franz von Siebold)는 일본에 있는 동안 채집한 일본의 식물들을 라이덴 대학 식물원에 보내왔다. 17세기 중반에는 온실도 만들어 졌고, 식물표본실 건물이 크게 확장되고 1857년에는 식물표본실 건물 일부가 대학교 천문대로 전용되었다.
이렇게 라이덴 대학 식물원(식물 표본실)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원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몇 안 되는 식물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저자는 암스테르담 중앙 기차역에서 라이덴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오전 11시 29분에 출발하여 20분 뒤에 라이덴 역에 도착하였다. 무거운 배낭을 어딘가에 맡길 곳을 찾다가 마침 역 앞에 있는 태국 음식점에 들어가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한 뒤 주인에게 짐을 맡아 줄 수 있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 보니 주인 아주머니는 같은 동양인으로서 정을 느꼈던지 흔쾌하게 저자의 짐을 부엌에 갖고 들어간다. 덕분에 저자는 가볍게 걸어서 라이덴 대학을 찾아 갈 수 있었다. 기차역에서 라이덴 대학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저자가 라이덴 대학을 찾아 간 날은 졸업생 동창회가 열려 정문 입구부터 구내까지 이 대학을 졸업한 동창들로 분주하고 복잡하였다. 스웨덴의 동식물학자인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는 20살의 젊은 나이에 유럽의 변방인 스웨덴에서 이 대학에 유학을 왔었는데 그는 이 대학교 안에, 이미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식물원을 둘러 본 뒤 (물론 당시에는 학명이 없었으므로 식물원 안에 있는 식물 앞에 과, 속, 종을 써놓은 표식판이 없었다), 꽃과 나무의 모양이 다르고 꽃 조차도 여러 종류가 있어 전혀 별개의 생명체로 보이지만, 목사 아들인 자기는 식물학자가 되어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자연의 체계’를 공부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는 평생 식물, 동물, 광물의 체계를 연구하여 학명(계,문,강,목,과,속,종)을 만들고 이 학명에 따라서 식물 8,000종, 동물 4,400종의 체계를 유기적으로 분류하여 오늘날 우리가 보는 동식물학과 광물학의 체계를 만들었다.
린네에 대한 이러한 사실을 이미 오래 전에 알고 있던 저자로서는 린네에게 영감을 주었던 식물원을 반드시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라이덴 대학을 방문한 것이다.
대학 교수를 만나 저자의 방문 목적을 이야기 하였더니 교수는 멀리 동양에서, 린네의 호흡이 배어 있는 식물원을 찾아 온 저자에게 감탄하였는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저자를 조그만 강당으로 안내하였다. 강당은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실 2개를 붙여놓은 크기이고 바닥은 참나무 마루로 되어있고 벽도 참나무이고 강단도 참나무로 되어 있었는데 고색(古色)이 전체를 감쌌다. 이야기를 들으니 이곳이 바로 린네가 학위를 받은 강당으로서 실내 장식은 모두 300여 년전 당시 그대로라고 한다. 덕분에 저자는 린네가 학위를 받은 강단에도 올라가 보았다.
이곳 식물원은 정원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정도로 작은 면적이다(가로 250m, 세로 100m 정도). 큰 나무도 많이 없고 화초가 대부분이고 높이 2m 정도의 관목이 여기 저기 있을 뿐이다.
호기심이 충만한 젊은 린네가 책과 노트를 들고 대학 구내 강의실을 씩씩하게 걸어 다니고 이곳 식물원에도 들려서 꽃 한송이 풀 한포기에 감탄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식물원 화초 사이를 걸어 다니다가 화단 한 가운데서 뜻밖에 린네의 흉상을 만날 수 있었다. 흉상이나마 반가워 저자는 흉상 옆에 함께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라이덴 대학 식물원은 조그만 규모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 주고,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인 자연과학자 린네에게 평생에 할 일에 대한 영감을 주어, 젊은 시절의 꿈을 이루게 해 준 식물원이다.
권주혁.
동원산업 상임고문·강원대 산림환경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 농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이건산업에 입사해
이건산업(솔로몬사업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파푸아뉴기니 열대 산림대학을 수료했으며,
대규모 조림에 대한 공로로 솔로몬군도 십자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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