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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 이스라엘처럼] ⑤ 비상장회사도 예외란 없다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거의 모든 후보들이 '경제민주화'를 가장 중요한 대선 공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 핵심적인 내용에는 재벌개혁 방안이 포함돼 있는데, 그럼에도 후보들의 재벌개혁과 관련된 공약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 대부분의 캠프들이 순환출자를 금지시키고 출자총액을 제한하고 계열사간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하는 정도의 정책들을 내세우고 있으며, 이러한 정책들은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온 것들에 불과하다.

물론 이러한 정책들도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가지고 집행하느냐에 따라 상당한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재벌 문제에 있어 우리와 비슷한 입장에 놓여있던 이스라엘 정부가 시민들의 시위(이스라엘판 Occupy Wallstreet)를 계기로 추진키로 한 재벌개혁 제도들을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재벌개혁과 관련해 어떤 시사점이 있는지 찾아본다.

[대선기획 - 재벌개혁, 이스라엘처럼]

① 일감몰아주기 사전 차단규제

② 이사회·사외이사 '제대로'

③ 정부의 사후적 심사 권한

④ 회사·증권관련 사건 전담법원

⑤ 비상장회사도 예외란 없다

이스라엘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피라미드식 소유구조를 가지고 있는 그룹이 이스라엘 경제를 장악하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가 중요 관심사였다.

이스라엘 그룹의 경우 상장회사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비상장회사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룹내 거래는 이러한 비상장 계열사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비상장회사의 경우 상장회사에 비해 훨씬 공시되는 내용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이 문제를 이스라엘은 어떻게 다뤘을까.

이스라엘 당국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비록 비상장회사라 하더라도 거래관계가 '상장회사의 입장에서 중요하다(material)'고 판단되는 경우 상장회사와 똑같은 정도의 공시와 금융당국인 ISA에 보고를 하도록 하고 있다.

ISA의 규정인 ISA 21편을 보면 그룹내 계열사인 경우 상장회사와 동등한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명시했다. 예를 들어, 비상장회사와 상장회사 간의 거래계약의 경우 상장회사에게 중요한 것이라면 상세한 내용이(상장회사 공시 규정과 마찬가지로) 공시되도록 했다. 또한 이사의 책임(의무)부분에 있어서도 그룹의 이해관계로 인해 개별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개별회사의 이익이 되도록 행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같이 이스라엘에서는 원칙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스라엘 재벌의 문제를 이렇게 단순하게만 접근할 수는 없다는데 인식을 공유하게 됐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 정부는 2010년 12월 '시장집중위원회'(Market Concentration Committee)라는 특별 위원회를 설치하고 이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 특별위원회는 수상 및 재무성 장관(Prime Minister and Ministry of Finance) 직속으로 되어 있으며, 2011년 9월 중간 보고서를 이스라엘 수상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몇가지 내용이 담겨있다.

첫째, 금산분리의 엄격한 적용을 권고했다. 4년이라는 유예기간을 주고 금융업 또는 비금융업 한쪽을 매각하도록 해야 한다는 권고를 해 놓은 상태다. 또한 같은 그룹내 금융업과 비금융업간의 임원이나 이사의 겸직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했다.

둘째, 이스라엘 재벌의 소유구조에 대한 대대적인 재편을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한 소액주주들에 대한 권한 강화를 내용으로 ▲복잡한 소유구조를 가지고 있는 경우 최소 1/3 이상의 이사회 구성원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도록 한다 ▲사외이사는 전원 독립주주의 과반수 이상으로만 선임이 될 수 있도록 한다. ▲그룹에 속해 있는 임원의 보수 역시 독립주주의 과반수 승인에 의해서 정해진다고 권고하고 있다.

셋째, (그룹내) 특수관계인간의 거래(용역거래이든 대여와 같은 거래이든 상관없이)를 함에 있어 경쟁의 방법(예를 들어 경쟁입찰)을 통해 거래를 한 경우라면 'Comply or Disclose'의 방법을 권하고 있다. 또한, 그룹내 모든 회사의 감사위원회는 그룹내 모든 거래(일상적인 거래이든 아니든 상관없이)에 대해 논의 및 검토를 해야 한다. 다만, 이주 사소한 거래라고 판단되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

시장집중위원회는 최종 보고서를 이스라엘 수상에게 제출하기 전까지 외부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보고서와 최종 입법안이 나오게 되면 향후 이스라엘의 재벌들에 대한 강도 높은 조치들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최종 보고서에는 소액주주들의 권한 강화와 이해상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들이 담겨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OCED는 이스라엘의 이러한 개혁방안에 대해 평가를 유보하고 있는 입장이다. 평가를 하기에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개혁방안을 통해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스라엘은 재벌개혁과 관련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또 소액주주와 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정부당국도 드디어 개혁적인 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