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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장물' 외환은행 취득위한 하나금융의 '사기극'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독설과 유머로 유명했던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묘비명이다. 오역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노조가 대립하고 있는 현 상황에 잘 어울리는 말인 듯 싶다.

2010년 11월 하나금융지주가 론스타와 외환은행 지분 인수계약을 체결하려 할 때부터 외환은행 노조는 론스타에 외환은행이 불법매각됐었다며 원상회복 및 독자생존을 위해 투쟁을 전개했다.

하지만 2012년 1월27일 금융위원회가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자회사 편입을 승인한 이후로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한달 후인 2월17일 노조는 하나금융 측과 협상을 타결하고 론스타 관련 문제를 과거의 일로 덮기로 했다.

합의의 핵심은 하나금융지주가 5년간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을 보장하고, 외환은행 노조는 자회사로 편입된 은행의 경영 정상화에 최대한 협조한다는 것이다. 노조로서는 은행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육지책을 썼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독립성 확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독약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고, 결국 이는 현실화되고 있다.
 
다음은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이 보장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게 하는 내용들로, 다르게 보면 '미끼'다.

①자회사 편입 이후에도 외환은행은 별도의 독립법인으로 존속…
②5년 경과 후 상호 합의로 합병 등 협의할 수 있음…
③독립법인 존속하는 동안 노사관계, 인사, 재무, 조직 등 경영활동 전반에 대해 독립경영 보장… (2012년 2월17일 노사정 합의서 中)     

"하나금융지주는 2012년 2월17일자 합의서 정신을 존중할 것이며, 구체적인 사항은 은행장께 일임…" (2012년 11월8일 최흥식 하나금융지주 사장의 공문)
 
"해외 현지법인 영업 또한 Two Bank 체제 하에서 양 은행의 현지법인간 합병은 없을 것입니다" (2012년 11월8일 윤용로 외환은행장 방송연설 中)
 
"2.17 합의서 정신은 변함없이 지켜질 것입니다" (2013년 1월28일, 2월8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서신)
 
물론 중간중간 하나·외환 전산망 통합 추진 및 하나고등학교에 외환은행 자금 257억원을 출연하는 문제 등으로 인해 하나금융이 '본색'을 드러내고 외환은행 노조와의 합의도 무시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지만,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결국 '예상'대로 하나금융 측은 외환은행의 잔여지분 40%를 모두 확보키로 했다. 외환은행의 주주들로부터 은행 주식을 취득하는 것이 아닌 주식교환 방식이라 막을 방법도 요원하다.

내달 15일 이를 위한 임시주주총회가 열리며, 예정대로라면 4월26일 외환은행은 하나금융의 100% 자회사로 편입됨과 함께 유가증권시장에서 상장폐지된다.

특히 지난 12일과 14일 하나금융지주의 공시는 외환은행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직원들에게는 충격적이었다.
 
핵심은 △외환캐피탈은 외환은행이 자회사로 편입된 날로부터 2년 이내에 하나지주의 자회사로 편입 △PT Bank Hana와 인도네시아외환은행의 현지법인 통합절차를 2013년 12월26일까지 완료 △하나은행(중국)유한공사와 외환은행(중국)유한공사의 현지법인 통합절차를 2013년말까지 완료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하나금융 측은 해외법인 통합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고, 노조는 이를 근거로 당시 투쟁을 중단했던바 있다. 하지만 이처럼 외환은행 조직인 해외 현지법인과 자회사에 대해 하나금융이 공시를 통해 언급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합의는 안중에도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이에 전국의 영업점을 포함, 외환은행 전 직원이 18일부터 매일 교대로 연차휴가를 내고 서울 본점에 집결해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주식교환을 막고자 투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하나금융 측은 통합 방침을 철회할 뜻이 없어 보인다. 공시에서 언급한 통합절차는 합병 뿐만 아니라 해외 지주회사 설립도 포함한 의미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결론은 해외법인 연내 통합이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노조의 표현을 빌리자면 '합의를 위반하든 하지 않든 내 맘대로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김인환 당시 미래발전기획단장은 IT부문과 신용카드, 해외법인을 1년내 통합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를 '허언(虛言)이 아니었구나' 하고 떠올려보기에는 현 상황이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나금융으로서는 외환은행의 '주변'을 먼저 '정리'하면서, 나머지는 외환은행 지분을 모두 확보한 다음 일사천리로 합병을 밀어붙이면 되는 것이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어떻게 하느냐는 회사 경영의 문제인데 왜 '사기극'이라는 말까지 나오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하지만 외환은행의 독립경영 5년간 보장 및 이후 통합 여부는 추후 노사합의로 결정하겠다는 합의는 외환은행 노조와 하나금융, 금융위원회 등 노사정이 대화를 통해 사회적으로 합의한 사항이다. 이것이 어느 한 쪽에 의해 일방적으로 파기된다면 각계에서 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사회적 대화'의 성립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더욱 중요한 것은 외환은행 매각을 지연시켰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투자자국가소송)를 제기한 론스타가 있다는 점이다.

론스타를 상대로 승소하기 위해서는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관련된 의혹, 즉 외환은행이 BIS 비율이 낮아져 건전은행에서 부실은행으로 위장되고,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인 론스타가 금융자본으로 둔갑했다는 것을 풀어야 한다.

그간 외환은행 직원들과 시민단체들은 '뭉칫돈 6350억원의 몸통'과 '버뮤다 X파일', '의문의 팩스'와 '산업자본 조작', '도장값'과 두 관계자의 죽음 등 갖가지 진실들을 파헤쳤다.

하지만 오는 4월 외환은행이 상장폐지되면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장물'로 취득했다는 흔적들이 사실상 남지않게 된다.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들이 제기한 각종 소송도 무위로 돌아가고, 국민 혈세 2조5000억원이 걸려있는 론스타와의 소송 승소 또한 장담할 수 없다.  

하나금융이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하려 했을 당시,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추진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인수 과정에서 수차례에 걸쳐 론스타의 산업자본 문제가 확연히 드러났음에도 하나금융은 이를 애써 외면하고 외환은행 인수를 감행한 측면이 있고, 따라서 이번 기회에 '장물' 흔적을 없애려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