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안진석 기자] 글로벌 경기불황 여파로 선진국과 신흥국이 너나 없이 수입장벽을 높이면서 우리나라 수출품에 대한 수입규제가 최근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급격히 확산하고 있다. 특히 철강과 석유화학에 집중되고 있다.
규제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은 중소·중견기업의 피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보호무역의 장벽에 선제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금융투자업계와 한국무역협회, 철강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현재 우리나라에 대한 수입규제는 18개국, 총 127건으로 집계됐다.
2011년 말 111건에서 작년 말 120건으로 늘어난 데 이어 두 달 만에 다시 7건이 추가됐다.
신규 제소 건수도 작년에 총 23건으로 전년(18건)보다 늘어났고, 반대로 수입규제가 종료되는 건수는 작년에 16건으로 전년(20건)보다 줄었다.
현재 최종 판정이 나서 수입규제가 진행 중인 사안이 98건, 조사 중인 사안은 29건이다.
말레이시아 통상산업부는 지난 2월 19일 한국 등 5개국 강선재에 대해 반덤핑 최종 판정을 내렸다. 포스코 제품은 3.03%의 덤핑관세가 향후 5년간 부과된다.
호주 관세청은 지난달 한국산 후판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개시했으며, 말레이시아가 한국 및 중국산 전기주석 도금강판에 대해 역시 반덤핑 조사를 시작했다.
또 남아공이 지난 1월 말 한국산 코팅지에 대해, 브라질은 한국산 액상 엑폭시 수지에 대해 각각 반덤핑 조사를 개시했다.
연초에는 아르헨티나가 한국산 유입식 변압기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캐나다는 한국산 용접탄소강관에 대해 반덤핑 재조사를 실시키로 했다.
품목별로는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철강과 화학 품목에 대한 수입규제가 93건으로 전체의 73%에 달했다.
신흥국의 무역 규제가 특히 많았다.
현재 수입규제국은 동남아의 아세안 지역 7개국이 전체 건수의 51%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도, 중국, 미국 3개국이 합쳐 42%가량 된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산 철강재에 대한 동남아 신흥국들의 규제 움직임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현재 한국산 철강제품에 대한 수입규제 조사는 총 14건 중 8건이 아세안 국가에서 이뤄지고 있을 정도다.
태국은 재작년 하반기 이후에만 4건을, 인도네시아도 최근 1∼2년 새 3건의 제소를 남발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가 최근 강선재 덤핑판정으로 제소 대열에 가세했다.
아세안은 아니지만 신흥국 인도는 현재까지 한국산 냉연강 등 철강 제품을 중심으로 총 20건을 제소한 최대 규제국이다. 인도는 현재 한국 수입품에 대해 24건의 수입 규제ㆍ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은 17건을 규제 또는 조사하고 있다.
기간산업을 중심으로 경제를 키워나가는 신흥국들이 관련 상품 수요가 늘어난 데 발맞춰 자국 기업을 살리기 위해 외국 상품의 수입 규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수입규제 강화는 무엇보다 금융위기에 이은 글로벌 경기침체로 각국이 앞다퉈 수입장벽을 높이는 등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한국무역협회 김정수 국제협력실장은 "1999년 이전에 발생한 수입규제 조치 중 12건이 일몰재심 등을 통해 연장되는 등 전체적으로 수입규제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우리나라는 철강, 석유화학 등의 업종에서 최근 설비확장으로 생산능력이 증대되고 재고가 많아짐에 따라 제품 단가가 떨어진 채로 해외 수출이 늘어나게 됐고 수입국들이 이를 견제하고 나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포스코경영연구소 조대현 박사는 "동남아 철강산업은 아직 소규모 제철소에 의존하고 있어 한국 제품이 침투하기 쉽다"며 "이들 국가는 자국 기업 성장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반덤핑 등의 규제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철강의 경우 선진국 위주로 수출하다가 최근 다변화 차원에서 아세안 수출 규모가 커지게 됐다"며 "상대국과의 긴밀한 협의와 교류 등을 통해 사전 모니터링을 하고 예방책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타깃이 되는 것은 대기업이지만 정작 피해는 협력사인 중소기업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아이엠투자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경제위기 이후에는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 "규제나 시작되면 당할 수밖에 없고, 특히 큰 기업은 대비가 돼 있는 경우가 많지만 작은 기업들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라고 말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기업에 각국의 수입 규제는 악재다.
전문가들은 수입 규제로 인한 피해를 막으려면 기업의 '선제 대응'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대현 박사는 "반덤핑 규제에 대해서는 사후 대책보다는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며 "외국과의 민간협력체, 국영 기업과의 제휴 등을 통한 협의와 교류로 사전 감시를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수입 규제로 인한 피해를 장기적으로 예방하려면 기업이 생산 시설을 외국으로 재배치ㆍ이전하는 근본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며 "어려운 일이지만 미래의 피해를 막는 방법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