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각 부처의 새해업무보고가 시작된다. 새해업무보고는 한해의 주요 업무계획을 보고하고 검토를 거쳐 최종 확정하는 중요한 절차에 속한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각 부처는 이 계획대로 한해의 업무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이 업무보고의 중심은 당연히 대통령이다. 주요 정책에 대한 최종결정권은 대부분 대통령에 속하고 이를 조정할 수 있는 것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헌법상 대통령제 국가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업무보고를 받고 논의와 조정을 거쳐 업무계획을 확정토록하며, 때로는 보고된 업무와 관련하여 특별지시를 내려야 한다.
그런데 올해의 새해업무보고는 국무총리가 주재한다고 한다. 우리 헌정사에 찾아보기 어려운 파격적 행사가 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과정에서 공약한 책임총리제를 실현하기 위한 변형으로 생각된다. 대통령의 명을 받아 각 부처를 통할하게 되어 있는 국무총리의 실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나름대로 의미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실제 업무보고를 변형하여 시행할 때 두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먼저 주요 정책에 관한 대통령과 총리의 의견이 다른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총리주재 업무보고에서 토론하고 정리된 계획을 대통령이 추후 변경하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총리의 체면은 어찌되는가. 그러면 토론과 조정과정에서 낭비된 시간은 어떻게 되는가. 이 보다 더 심각한 것은 각 부처에서 보고되고 총리주재보고에서 정리된 것을 청와대 비서실에서 수정하거나 폐기하려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이런 사례들이 발생한 바 있다. 대통령비서실의 참모들은 송영무국방장관과 박상기 법무장관의 주요정책에 관한 발언을 가볍게 뒤엎어버린 것이다.
대통령을 의례적인 업무보고에서 벗어나게 하고, 각 부처의 정책담당자가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주제별 실무토론을 거쳐 주요 공공정책을 사전에 조율하고 생산적 대안을 찾으려는 시도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종전의 형식적 업무보고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장점들이 빛을 보자면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언제, 어떻게 보고되는 업무내용에 관여해야 할지 충분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김영종 동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