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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근무여건 조사하는 삼성전자서비스, 뻔뻔하다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사 근무여건 실태조사 설문지를 각 센터 비조합원들에게 돌리고 있다. 실태조사는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면담 시 제기된 사안으로 근무여건을 파악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이처럼 뻔뻔하고 기만적인 행태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故 최종범씨가 목숨을 끊은 지 한 달이 되어간다. 그동안 삼성전자서비스는 이 죽음에 대해 그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고, 노동자들의 요구에 대한 진정성 있는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모든 책임을 '하청 바지사장'에게 떠넘기려 했다.

하지만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의 책임은 대낮처럼 환히 밝혀졌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업무, 임금 지급, 심지어 고객에 대한 멘트까지 일일이 삼성이 지시했다. 표적 감사, 지역 쪼개기, 물량 뺏기, 노조 가입 방해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노동조합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의 주범인 삼성전자서비스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의 얘기도 없이, 사과도 없이 협력사 근무여건 실태조사를 한다니 노동자들을 바보로 아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근무 실태가 밝혀지지 않아서가 문제인가. 최종범씨의 죽음을 계기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생생한 증언도 있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살았고, 지금도 마이너스 통장으로 살았다는, 평일 저녁에 가족들과 식사 한 번 하는 게 소원이라는 그 뼈저린 절규. 이런데도 더 많은 죽음과 더 많은 증언이 필요한가.

삼성전자서비스는 조사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조사의 대상이고 최종범씨의 죽음과 노동자들의 뼈저린 고통을 만든 당사자로서 조사의 대상일 뿐이다. 삼성전자서비스가 하청업체의 근로조건을 조사한다는 것은 조폭 두목이 똘마니들이 운영하고 있는 유흥업소의 불법을 조사하는 것과 똑같다. 조폭 두목의 불법에 면죄부를 얻기 위한 설문조사일 뿐이다.

지금 삼성전자서비스가 해야 하는 일은 이런 뻔뻔하고 기만적인 설문조사가 아니다. 당장 故 최종범씨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 노조 탄압을 중단하고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피맺힌 요구를 전면적으로 수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