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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무차별 통상압박...‘안일한 대처가 피해 키웠다‘는 비판

미 트럼프 대통령

무차별적 미국발 통상 압박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 전쟁'을 시작하면서 중국과 산업 구조가 비슷한 우리나라가 같이 피해를 보는 형국이다.

우리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자국 우선주의 노선으로 선회한 미국의 정책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19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통상 전문가 등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발표한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에서 안보를 경제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개념으로 해석하면서 군사 동맹 같은 전통적 안보 요인이 아니라 경제적 면을 더 중요하게 평가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품목 수입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무역 제재를 가하는 수단으로 미 상무부는 조사 결과, 수입 철강에 관세나 쿼터(할당)를 적용할 것을 권고했다.

특히 권고안 중 하나로 한국을 포함한 12개 주요 수출국에 53%의 높은 관세를 부과하라고 제안했는데 캐나다, 일본, 영국, 독일, 대만 등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은 명단에서 빠졌다.

통상 전문가들도 미국이 우리 기업에 대한 수입규제를 강화하는 이유 중 하나로 중국과 우리 산업의 의존성을 꼽는다.

산업부는 미국이 한국 철강업계가 저렴한 중국산 철강을 가공해 수출한다고 보고 이 때문에 한국을 포함한 것으로 분석했다.

232조 조사를 포함한 최근 미국발 수입규제의 1차 표적은 중국이지만, 중국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산업 구조가 유사한 우리나라가 부수적 피해를 보는 것이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우리는 사드 때문에 중국에서 피해 봤는데 미국이 동맹한테 이럴 수 있느냐 억울하다고 생각하지만, 미국은 한중 교역·산업 관계가 굉장히 깊어진 부분을 문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 당국의 대처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은 군사 동맹과 무역 관계는 다르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지만, 정부가 미국이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고려해 '우리는 봐줄 것'이라고 안일한 기대를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미국의 동맹이라서 미국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강조했지만, 미국은 결국 한국을 고율 관세 대상 12개국에 포함했다.

또 정부는 과거 일본 사례처럼 미국과의 통상 마찰을 줄이기 위해 미국 현지 투자를 약속하고 에너지 수입을 늘리는 등 무역적자를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두드러진 효과는 아직 없다.

미국은 232조 조사에 앞서 세탁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와 태양광 전지·모듈 세이프가드 등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품목을 겨냥한 수입규제를 시행했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에서도 자동차 시장 추가 개방 등 다양한 요구를 하고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일본은 아시아 지역을 책임지는 하나의 파트너로 분명히 인식하지만, 한국은 미일 동맹의 수혜자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있다"면서 "미국은 한국이 군사동맹에서 이득을 얻는 만큼 다른 데(경제)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중국, 일본, 한국과의 교역에서 대규모 무역적자를 기록했다고 지적하고서 "이들 국가의 일부는 이른바 동맹이지만 무역에서는 동맹이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