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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BC > 한국야구, 그래도 위대했다

지난 한 달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한국이 숙적 일본과 처절한 `야구전쟁' 끝에 아쉬운 준우승을 머물고 말았지만 전 세계 야구팬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긴 `위대한 도전'이었다.

전국 고교팀이 55개에 불과한 한국은 야구 종주국 미국을 비롯해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득실거리는 중남미의 야구 강국 틈 바구니에서도 빼어난 기량으로 결승까지 진출, 일본과 막판까지 치열한 자존심 대결을 벌였다.

고교팀 수가 4천100여개가 넘는 일본이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 레드삭스)와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 등 빅리거 5명을 포함해 역대 최강팀을 구성한 뒤 이름마저 비장한 `사무라이 재팬'을 출범시켰지만 한국은 출발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시즌이 끝나자 마자 대표팀 구성에 들어갔지만 코칭스태프 임명 과정부터 삐걱거렸다.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룬 김성근 SK 감독과 올림픽 금메달을 견인했던 김경문 두산 감독이 고사 의사를 밝혀 사령탑의 중책이 제1회 WBC에서 4강 신화를 만들었던 김인식 한화 감독에게 맡겨졌지만 김감독이 코치진을 전원 현역 감독들로 구성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잠시 논란이 일었다.

우여곡절 끝에 김인식 감독은 전직 감독과 현역 코치들로 코칭스태프를 짰지만 선수 선발 과정은 더욱 복잡했다.

최고의 선수들로 최강의 팀을 구성하겠다는 감독의 욕심과 달리 한국야구 마운드와 타선에서 간판 스타인 박찬호(필라델피아)와 이승엽(요미우리)이 소속 팀에만 전념하겠다며 태극마크를 고사했다.

또 김 감독이 희망했던 백차승(샌디에이고)은 미국 시민권자라는 따가운 시선 탓에 불참했고 김병현은 하와이 전지훈련 소집 하루 전에 여권을 분실했다는 황당한 이유로 제외됐다.

설상가상으로 김인식 감독이 큰 기대를 걸었던 추신수(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일본 도쿄에 도착한 다음날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자 소속팀 클리블랜드가 선수 기용에 문제점을 제기하며 `과보호' 논란까지 벌어졌다.

상대팀 분석에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를 판에 집안을 다스리기도 버거웠던 사정이었다.

적지않은 혼란속에 6일 도쿄돔에서 중국과 첫 경기에 나선 대표팀은 9-0으로 산뜻한 출발을 거뒀으나 일본과 승자전에서 믿었던 김광현이 무너지면서 2-14 충격의 콜드게임패를 당했다.

그러나 심기일전해 패자부활전에서 중국을 14-0, 콜드게임으로 누르고 2라운드 진출 티켓을 확보한 한국은 일본과 1-2위 결정전에서 선발 봉중근의 눈부신 호투와 김태균의 천금같은 결승타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했다.

영원한 라이벌이자 이번 대회 최강팀으로 평가되던 일본을 꺾은 대표팀은 사기마저 크게 올라 2라운드에서 강호 멕시코를 8-2로 격파한 뒤 일본마저 4-1로 제압, 단 2경기만에 2회 연속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중남미 최강국 베네수엘라와 맞붙은 준결승은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이 접전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한국이 압승을 거뒀다.

그리고 마지막 일본과의 결승전.

객관적인 전력이 처지는 것은 분명했지만 선수 전원이 몸을 사리지 않았다.

안타수 5-15의 일방적인 열세에도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9회말 2아웃 뒤에 끝내 동점을 만들어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가는 투혼까지 보였다.

그럼에도 한국야구는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해 우승 헹가래의 기쁨을 일본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우승의 영광은 영원한 라이벌 일본에게 돌아가고 말았지만 지난 한 달 태극마크를 달았던 `불굴의 전사'들이 보여준 강인한 투혼은 전 세계 야구팬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위대한 도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