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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신용 위기 속에 "정부보다 기업이 더 믿을만 해"

[재경일보 이규현 기자] 많은 나라들이 국가 신용등급 하락 또는 하락 위기에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세계적 기업들의 신용도는 날로 상향 조정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신용등급에서 국가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가보다 기업이 더 믿을만하다는 것이다.

정부부문은 조세수입과 국제 적립금, 국유재산 처분에 따른 막대한 현금비축을 통해 일반적으로는 지급능력이 가장 탁월한 실체로 간주된다.

하지만 최근의 경제 위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마저 민간부문보다도 더 높은 신용등급 강등이나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 등의 위험에 처해 있다.

이것은 기업이 창고에 현금을 쌓아놓으며 지금보다 몇 발자국 더 나아가 먼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과 크게 대조되는 양상이다. 애플은 미국보다 더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다.

미국의 경우 정보기술(IT) 전문 '오토매틱 데이터 프로세싱'과 석유회사 엑손모빌, 생활용품과 제약부문의 '존슨 앤드 존슨',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대표적 신용등급 AAA 기업이다.

국제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이들 4개 대기업은 국가 신용등급이나 신용 전망에 영향받지 않을 것"이라면서 "지급불능 상황에 대비한 5년물 신용디폴트스왑(CDS) 비용이 국채보다 적어도 20bp(0.2%포인트) 낮다"고 밝혔다.

미국 이외에도, 스페인의 바스크, 나바르레 등 자치주와 일본 캐논사의 신용등급이 자국의 신용등급을 능가하고 있다.

신흥시장의 많은 기업도 낮은 부채수준과 높은 성장세로 국가보다 높은 등급을 받고 있는데,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로 사업영역을 확장한 터키 이동통신 사업자 투르크셀, A-로 등급이 상향조정된 브라질 맥주회사 앰베브 등이 대표적이다.

그 외 유수 기업들의 대규모 차입 비용이 더욱 싸지는 등 자금조달 조건이 크게 개선되고 있으며, 영국 최대 천연가스 공급업체 센트리카 및 제약회사들인 사노피, 노바티스 및 머크 등은 G7(선진 서방 7개국) 국채보다도 CDS 스프레드(수익률 차이)가 낮아 "초안전 자산"이라고 불리기까지 하고 있다.

'런던 앤드 캐피털'사의 아쇼크 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2008년 글로벌 신용위기 이후 많은 다국적 기업의 경우 대차대조표상 부채를 줄이고 현금자산을 늘려 신용등급 상향 사이클에 올라 타 국가보다 더 높은 평가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샤는 갈수록 더 많은 기업이 이런 범주에 들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 107개 민간 기업과 지방정부가 외환보유 기준으로 볼 때 소속 국가보다 더 높은 신용등급을 가진 것으로 S&P는 분석하고 있다.

이는 중앙정부가 채무를 갚을 수 없는 상황에서조차 이들 경제적 실체들은 부채상환 의무를 이행할 능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기업이 모든 면에서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보다 기업에게서 더 배울 것이 많은 것이 요즘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