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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에 엄습해 오는 공포 

[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한국 경제가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유럽 재정위기가 세계 경제에 1929년 대공황에 버금가는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까지 내놓았다. 시장에 근거없는 불안감을 일으켜서 좋을 것이 없는 당국자의 입에서 '대공황'이라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현재 상황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증시와 외환시장 등 금융시장은 유로존 위기와 글로벌 경기침체 조짐으로 인해 극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계를 중심으로 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는 등 사실상 패닉 상태다. 현재로서는 어떤 것도 투자자들의 불안을 가라 앉히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시장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에 대한 낙관을 가지고 있다면, 금융시장은 작은 이벤트에도 세상이 무너질 듯 출렁이는 모습을 보이다 금방 안정세로 돌아선다. 하지만 지금은 마땅한 호재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1977년 외환위기로 인한 IMF 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어느 정도 대외 악재에 대해 내성을 키웠지만, 유로존 사태는 그리 간단해보이지 않는다.

특히 유로존 위기가 G2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경기를 침체시켜 우리나라의 실물경제까지도 급격하게 위축시키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수출이 최근 3개월 연속으로 크게 감소한 것이 심상치 않다. 이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 있는 일로, 수출은 우리나라 경제의 동력과 같아 앞으로 우리 경제가 힘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수출은 지난 1월 24개월만에 적자를 기록한 후 4개월 연속 흑자행진을 하고 있어 겉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흑자행진의 이면에는 수출과 수입이 전년 동월 대비로 모두 3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보이고 있다는 뼈아픈 사실이 숨겨져 있다. 이른바 '불황형 흑자'다. 특히 지난달에는 우리나라 수출 3대 시장인 중국(-10.3%), 유럽연합(-16.4%), 미국(-16.5%)으로의 수출이 모두 감소했다. 

수출은 당분간 계속해서 부진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이 잘 되려면 선진국, 특히 세계 경제의 3대축인 미국과 중국, 유럽의 경기가 좋아야 하지만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디폴트 수준에 이른 부채와 저성장에 허덕이며 경제성장의 동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고, 새로운 세계 경제의 동력으로 떠오른 중국마저도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상태가 오래 간다면 우리나라 경제의 앞날도 암담하다.

수출 여건 악화로 인해 기업들의 손익구조가 나빠지는 등 경제가 점점 활력을 잃으면서 생산과 소비, 설비투자 등 내수 지표들 역시 곤두박질치고 있다. 4월 광공업 생산은 1년 전과 같은 수준이고, 제조업의 6월 업황 전망은 전달보다 4포인트 떨어지면서 13개월 연속 기준치인 100을 밑돌고 있다. 현재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4월 경기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도 2개월 연속 하락했다.

특히 가계는 900조원을 돌파한 부채 등으로 인해 소비 여력을 잃어버렸다. 내수 부진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4월 한국은행이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말 가계부채 잔액(가계신용 기준)은 912조9000억원으로 마900조원 선을 돌파했다. 임계점에 달한 가계부채는 우리나라에 세 번째 경제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시한폭탄의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는 상태다.

현재 가계는 부채가 산더미 같은 데다 주가 하락과 부동산 시장 침체가 가처분 소득마저 크게 악화된 상태다. 여기에다 경기 둔화로 인해 주머니 사정까지 좋지 못하다. 이를 반영하듯 5월 신용카드 대출 연체율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경기 침체로 가계의 경제 사정이 악화되면서 카드대출을 제 때 갚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부채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중산층이 가계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산을 투매해 자산 디플레이션이 본격화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렇게 되면 '자산 가격 하락→부(富) 감소→소비 부진→경기 위축'이라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높고, 여기에 물가 상승까지 겹치면 경제는 고물가·저성장이 함께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최악의 늪에 빠지게 된다. 기업도 '수출 감소→생산 둔화→내수 위축→경기 침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 대해 걱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하반기에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 아래 1년치 재정의 60%를 상반기에 앞당겨 집행한 정부의 정책적 노력으로 인해 고용지표가 계속해서 개선되고 물가도 2%대의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제조업 취업자 수가 9개월 연속 감소하고 장바구니 물가 등 서민 물가는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이고 있어 우려를 불식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이처럼 기업과 가계가 어려움에 빠져 휘청거리자 마지막 보루인 정부에서는 경기 부양에 대한 의지를 강력하게 내비치고 있다. 박재완 장관은 국회의 동의가 필요 없는 중소기업 창업·진흥기금,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무역보험기금 등 각종 운용기금을 수조원을 늘려 경기부양을 위한 ‘실탄’으로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재정 악화를 감수하면서 계속해서 경기부양카드만 내놓을 수는 없어 유로존 사태가 진정되고 세계 경제가 안정을 되찾지 않는 한 국내 경제의 어려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 정부는 하반기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낙관적인 희망도 버리지 않아야 겠지만 그리스와 스페인 디폴트와 유로존 붕괴 등 최악의 국면을 맞을 상황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