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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급락에 완성차·전자업계 '비상' vs 항공·여행·면세 '희색'

[재경일보 조동일 기자] 환율이 연일 연중 최저치를 갱신하면서 급락하자 국내 기업들이 향후 환율의 추이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수출 기업들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가뜩이나 위축된 수출 환경이 더 악화되지 않을지를 놓고 노심초사하고 있는 가운데, 수출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나 전자업체는 다른 업종보다 환율 하락을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반면 항공·여행업계나 내수 기업들은 여행객 증가와 수입물가 안정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17일 오전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3.00원 내린 1,104.20원에 거래를 마감, 연중 최저점을 경신했다.

이는 또 작년 10월28일 1,104.90원으로 마감된 이후 최근 1년 동안 가장 낮은 수치다.

이날 관련업계에 따르면, 수출 비중이 75∼80%를 차지해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매출이 약 2000억원(현대차 1200억원, 기아차 800억원) 줄어드는 현대기아차는 최근 환율 급락에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 그룹 산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올해 연평균 환율을 1130원대로 예상하고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LG전자도 매일 환율 동향을 모니터링하는 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수출 가격 경쟁력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발생한다"면서도 "수입 부품 등의 구매 비용이 싸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유를 수입한 후 가공해 수출하는 정유업계도 환율이 하락하면 환차익이 발생해 손익 개선 효과가 있지만 수출 가격 하락으로 영업이익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한 심경으로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SK에너지의 한 관계자는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 경영안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는 만큼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해 환율 영향을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제품을 수출해 번 외화를 유연탄과 철광석 등 주요 원료수입 시 결제에 사용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환율 하락에 수출업체들은 울상을 짓고 있는 반면 항공·여행·면세업계는 함박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상반기 유가 상승으로 고전한 항공사들은 최근 환율이 떨어져 외화부채가 축소되고 달러로 결제하는 비용도 줄고 있다.

대한항공 측은 환율 하락이 재무평가나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반기고 있다.

대한항공의 외화부채는 지난달 말 기준 73억5000만달러로,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장부상으로 735억원의 평가이익이 생긴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10원 변동할 때마다 외화부채에서 발생한 평가이익이 발생하고 항공유 구입비용, 항공기 리스비용이 줄어 87억원 상당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행업계도 환율 하락으로 여행 수요가 늘어날 것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내 최대 여행사인 하나투어의 정기윤 팀장은 "외국 물가가 내려가는 효과가 있어 여행 수요가 늘어나는 데는 확실히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여행사들 주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면세점도 관광객들의 구매액이 늘어 혜택을 볼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경절 특수 기간이 끝난 이 시점에 매출 증가 요인이 다시 생긴 것"이라며 "환율이 계속 떨어지면 연말 여행 시즌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입 원재료를 주로 사용하는 전형적 내수업종인 식품업계 역시 곡물 원재료를 수입할 때 대부분 달러를 사용하기 때문에 환율 하락을 반기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곡물 원재료를 수입하는 CJ제일제당의 경우 환율이 10원 내릴 때마다 1년에 30억원의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다.

실제 제일제당은 원달러 환율이 1600원까지 치솟았던 지난 2008년 하반기엔 환차손만으로 2000억원의 손실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