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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경제민주화 공약 발표… 재벌개혁보다 공정경쟁 강화 방점

[재경일보 김영은 기자]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는 16일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보다는 시장의 공정경쟁에 방점을 둔 경제민주화 정책을 12월 대선공약으로 발표했다.

대·중소기업 공정경쟁, 경제약자 보호에서는 당 공약기구인 국민행복추진위의 건의를 대폭 수용하고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언급한 내용을 모두 포괄했다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대기업의 경제력 남용을 근본적으로 고치기 위한 구조개선책에서는 수위가 크게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강도높은 재벌개혁안으로 검토됐던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박 후보에게 보고한 방안 가운데 사실상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대기업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금산분리(산업자본의 금융회사 소유 규제), 중소기업 사업영역을 침해하는 계열사 신설을 막기 위한 '계열사 편입심사제', 재벌총수 국민참여재판 도입, 재벌총수의 사익편취때 계열사 지분매각을 명령할 수 있는 '계열사 지분조정명령제' 도입 등을 하나의 법 체계로 묶는 '대규모기업집단법 제정'을 최종 공약에서 배제했다.

물론 대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해 규제 강도를 대폭 높임으로써 시장의 공정경쟁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기는 했고 향후 경제위기에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전담해야 하는 재계를 과도하게 위축시키는 법률인데다 기존 법률 체계와도 충돌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과 재계 반발을 감안해 상대적으로 실현가능성이 높은 부분만 공약으로 채택한 것이라는 현실적 분석도 나오고 있지만, 야권 후보진영으로부터 `경제민주화 의지 후퇴'라는 비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는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5대 분야, 35개 실천과제로 이뤄진 경제민주화 공약을 제시했다.

그는 "대기업은 골목상권이나 재래시장 등을 위협했던 것을 과감히 내려놓고 자기 희생을 해야할 것"이라며 "저는 반드시 모두가 함께 공존하고 시장질서를 바르게 잡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경제적 약자의 보호를 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간 차별해소 ▲특수고용직 종사자 권익보호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실효성 제고 ▲대형유통업체의 납품·입점업체에 대한 불공정행위 근절 ▲대형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진입규제 ▲소비자보호기금 설립 ▲소비자 피해구제명령제 도입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재벌개혁 카드'를 대부분 거부한 것과 달리 불공정행위 규제 및 경제적 약자 보호책은 대부분 수용한 셈이다.

그러면서 "필요한 부분은 공정거래법 등 개별법에 반영하고 (대규모기업집단법) 제정 논의는 중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정거래 관련법의 집행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이라며 '솜방망이' 처벌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공정거래위의 전속고발권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공정위에만 부여된 불공정행위 고발권을 조달청장·중소기업청장·감사원장 등에게 함께 주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증권 부문에만 허용된 집단소송제를 다른 업종으로 확대하고, 대기업이 불공정행위 피해액보다 많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또 보험설계사·학습지교사·화물운동자 등 특수고용직 종사자의 권익보호 장치를 마련하고, 중소기업의 납품단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협동조합 단가조정협의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소비자 피해 구제 방안을 마련하면 소송 없이 신속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소비자 피해구제 명령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박 후보는 그밖에 ▲프랜차이즈·대형 유통업체 불공정계약 근절 ▲건설·정보기술(IT) 분야 하도급 불공정특약 방지 ▲소비자보호기금 설립 등을 약속했다.

공정거래 관련법 위반행위 전반에 대해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이같은 행위의 금지를 청구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공약으로 제시했다.

금산분리 강화와 관련해서는 ▲금융·보험 계열사가 보유 중인 비금융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 강화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한도 축소 ▲금융계열사가 일정 요건 이상일 때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 의무화 등이 공약에 담겼다.

그러나 대기업이나 총수일가에 대해서는 부당 내부거래가 발생했을 때 부당이익을 환수하고, 대기업 지배주주·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해 사면권 행사를 제한하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상 횡령 등에 대해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을 강화하는 선에서 정리됐다.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해서는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했으나 기존 순환출자는 손대지 않았다.

이외에도 비(非)지배주주의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을 위한 시스템 구축, 독립성 강화가 전제된 국민연금 등 공적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 집중투표제·전자투표제·다중대표소송제도의 단계 도입도 포함됐다.

박 후보는 대규모기업집단법 제정 방안에 대해 "세계적 선례가 거의 없고, 현행 법체계와 충돌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공약에서 배제한 채 중장기 과제로 넘겼다.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에 대해서는 "우리 기업이 외국 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에 노출될 수 있고, 지금 어려운 시점에 합법적으로 인정되던 과거 의결권까지 제한한다면 기업이 큰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요 경제범죄 국민참여재판에 대해서는 헌법상의 평등권 침해 논란을 언급하면서 "경제범죄에 대한 형량 강화로 해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 약자에게 도움을 주고, 경제에 부담을 주고 국민공감대가 미흡한 정책은 단계적으로 접근하며, 대기업집단의 장점은 최대한 살리되 잘못된 점은 반드시 바로잡는 것이 경제민주화 3개 원칙이라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맡고 있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박 후보가 불공정 행위 규제에서는 문·안 후보가 언급한 내용을 모두 포괄하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만 하다"며 "그러나 행위규제만으로도 경제민주화가 해결되지 않을 때 구조개선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점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 35가지 가운데 구조개선책은 금산분리 방안의 일환인 중간금융지주사 도입이 유일하다"면서 "재벌의 구조개선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후보측 안종범 의원은 "실행의 부작용이 없고 실효성이 높은 방안들을 채택한 것"이라며 "총선에서 내놓은 방안까지 패키지로 보면 경제민주화를 이루는 데 획기적 조치"라고 반박했다.

이정현 공보단장도 "김 위원장의 방안과 같으면 경제민주화이고 다르면 경제민주화가 아닌 것처럼 알려진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중요한 것은 실현 가능성이 큰 방안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