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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대기업·부자대신 월급쟁이 쥐어짜는 세법개정안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세법 개정안은 근로자들의 세금을 늘려 정부 재원을 메꾸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대기업·고소득층은 그대로 두고 근로자들에게 세수 부족의 책임을 떠넘긴 세금폭탄에 국민들은 허망해하고 있다.
 
이번 세법 개정안에 따라 늘어나는 세금을 부담할 주체별로 분석해 보면 대기업이 1조원, 중소기업이 3700억원을 부담하는데 연소득 3450만원 이상의 근로자들이 부담하는 몫이 무려 9800억원이다. 한국 최대 대기업 한 곳의 한 분기 당기순이익이 7조7000억원이다. 그런 대기업들 전체와 월급 근로자들을 상대로 같은 1조원을 걷겠다는 발상에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세수가 부족하다면 당연히 부자증세가 우선이다. 우리나라 대기업과 고소득층은 각종 공제와 과세예외 규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혜택을 보고 있다. 단적으로 OECD 평균 상위 20%는 시장소득의 28%를 소득세와 사회보험료로 내고 그 중 6%만을 현금 형태의 사회복지로 돌려받지만, 한국의 상위 20%는 시장소득의 9%를 내고 2%를 돌려받는다. 순세금으로 따지면 OECD 평균 상위 20%는 22%, 한국 상위 20%는 7%에 불과한 것이다.
 
OECD 평균 하위 20%는 시장소득의 23%를 국가에 지불하고 67%의 사회복지 지원을 받는 데 반해, 한국 하위 20%는 8%를 내고 10%의 지원밖에 받지 못한다. 한국이 증세를 한다면 세금을 어디서 더 걷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대기업·고소득층에게는 각종 공제혜택 중 일부를 없애는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인 증세가 필요하다. 게다가 이번 세법 개정안에는 고소득 자영업자들에 대한 과세 투명성 확보와 세수 확보 방안조차 들어있지 않다. MB정권이 강행한 부자감세만 되돌려도 월급쟁이들의 세금을 올리지 않을 수 있다.
 
한국의 근로자들은 전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소득 비중이 OECD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이어서 소득의 분배에서부터 이미 대기업·고소득층에 비해 불이익을 겪고 있다. 그런 근로자들에게는 1조원의 세금을 더 빼앗을 게 아니라 노동소득분배율을 개선하는 것이 당연하고, 세제의 집중적인 혜택을 보고 있는 대기업·고소득층을 상대로 증세를 하는 것이 세수 부족을 해결할 근본 방안이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조세의 대원칙을 무시하고 정부 독단으로 만든 이번 세법 개정안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유리지갑을 털어 빈 곳간을 메꾸려는 세법 개정안, 이대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