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퇴임후를 고려하여 산속에 지어놓은 산막으로 들어왔다. 허리가 부실하여 내가 재직하였던 대학병원에서 점검을 한 후 어제 저녁부터 산막에 머무르게 되었다. 사방을 보아도 나무요 초록이다. 사람들은 좀처럼 흔적을 보기 어렵다. 가볍게 부는 바람에 초록색 나뭇잎들은 약간씩 몸을 흔들고 숲속으로 스며든 햇살이 나무들의 숨소리를 더욱 생기 나도록 한다.
자연 속에 묻혀 있으니 걱정도 욕심도 없다. 자질구레한 일들에 부대끼며 살던 서울에서 잔병이 달라 들고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무상함을 절감하던 나로서는 이번 입산이 일종의 현실도피와도 같다. 현실도피라도 좋다. 그저 마음이 편하고 몸이 좋아진다면 어떤 명목이든 산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좋은 것이다.
산속에 있는 산막에도 텔레비전은 설치되어 있고, 세상의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오늘 아침 문득 텔레비전을 켜니 뉴스가 나온다. 예정된 것이긴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재판을 받는 모습이 생경스럽다. 박 전대통령은 불과 몇 달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청와대에서 온갖 특권을 향유하던 사람이다. 그리고 최순실씨는 대통령의 그늘에서 호가호위하면서 권력을 누리든 사람이다.
불과 몇 달만에 쌍전벽해가 되어버린 이들의 처지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온갖 특혜와 호사를 누리던 사람이 비좁고 차가운 구치소에서 한 끼 1,400원짜리 식사를 하여야 하는 처지에서 형법상의 단죄를 받아야 하는 처지로 바뀐 것은 그야말로 천국에서 지옥으로 바뀐 것과 같지 않을까?
이런 굴곡진 삶이 부러운 것은 바로 자연 속에서 바람과 구름, 그리고 나무들을 친구로 살아가는 삶이 될지도 모른다. 인간이 진정 평화롭고 행복하자면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고대 중국의 노자는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지혜로운 삶을 영위하자면 무위자연으로 살아가라고 하였다.
요즈음은 나라의 대통령이 바뀌고 정부 요직에 새로운 사람들이 등용되는 소식이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다. 이는 박근혜전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신세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꽃은 피면 지고, 권력은 시작이 있으면 끝나는 날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영욕의 부침에 초연하게 살아가는 길은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밝은 태양아래 하늘거리는 나뭇잎에 시선을 두고 지나가는 봄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 간 자는 우주의 섭리에 따라 산 자이니 행복은 몰라도 불행이 가까이 하지는 않을 것이다.
<김영종 동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