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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슈링크플레이션에 칼 빼든 공정위

공정거래위원회가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제품 용량을 줄이는 눈속임,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을 부당행위로 지정한 데 이어 이에 대해 소비자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공정위는 특히 새로운 쇼핑 트렌드로 자리 잡은 SNS 마켓 등과 같은 인터넷 플랫폼에서의 소비자 피해 실태조사를 담은 ‘2024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지난 8일 발표했다.

이에 슈링크플레이션의 사례와 정부의 대응에 따른 인플레이션 영향을 정리해 보았다.

▲ 보이지 않는 가격 인상, 슈링크플레이션

슈링크플레이션이란 수축이라는 뜻의 영어 ‘슈링크’와 지속적인 물가가 상승 현상을 나타내는 ‘인플레이션’이 만나 탄생한 합성어다.

기업이 제품의 용량을 축소하는 행동은 인플레이션 상황이 왔을 때 소비자가 이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면서 이익은 유지하는 꼼수 중 하나로 꼽힌다.

슈링크플레이션의 사례로 과자의 손상을 막기 위해서라며 봉지 안에 과자를 얼마 채워 넣지 않아 논란이 되었던 ‘질소과자’를 들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가격 대신 용량을 줄이는 속임수, 슈링크플레이션 [한국소비자원 제공]
눈에 보이는 가격 대신 용량을 줄이는 속임수, 슈링크플레이션 [한국소비자원 제공]

슈링크플레이션의 문제점은 단순히 소비자의 가격 부담 상승만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인플레이션 우려 외에도 기업 자체의 부담을 몰래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도 줄어든 제품의 양·질을 체감적으로 느끼지만, 가격 상승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이미 한 번 줄인 제품의 양이나 질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도 슈링크플레이션의 문제로 꼽힌다.

실제 지난해 12월 한국소비자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자주 찾는 식품 9개 품목, 37개 제품에 걸쳐 평균적으로 27g의 무게가 줄인 슈링크플레이션 사례로 나타났다.

당시 한국소비자원이 지목한 가장 심한 슈링크플레이션 상품은 풀무원 핫도그 제품들로, 한 봉지에 5개, 총 400g이던 제품이 지난해 3월부터는 4개에 320g으로 20% 감소했었다.

물가
[연합뉴스 제공]

▲ 칼 빼든 공정위, 슈링크플레이션 대응 방향은?

공정위는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해 유통·식품업체와의 자율협약 체결과 제품 용량 변경 모니터링을 하겠다고 밝혔다.

또 가격정보 포털인 한국소비자원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품목을 확대해 시중에 있는 다양한 제품에 대해 전반적인 감시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공정위는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 용량을 줄이거나 원재료 비율을 낮추는 행위를 ‘부당한 소비자거래행위’로 규정한 바 있다.

부당행위에 포함되면 관련법에 근거해 최대 3000만 원의 과태료를 물릴 수 있고, 공정위 내부 지침으로도 최대 1000만 원의 과태료 부과가 가능하다.

또 공정위는 환경부·식품의약품안전처와 협력해 제품 용량 표시에 대한 규제도 강화한다.

한국소비자원의 슈링크플레이션 감시 체제 [한국소비자원 제공]
한국소비자원의 슈링크플레이션 감시 체제 [한국소비자원 제공]

주요 규제 골자는 가격이나 용량이 변동될 때 변경 전후 용량을 모두 포장지에 기재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는 대형마트 등에서도 단위당 가격을 의무적으로 표시해야 하는 품목을 현재 84개에서 향후 점진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슈링크플레이션 규제의 목적은 소비자의 알 권리 향상과 공정 경쟁 기능이다.

소비자에게 가격과 더불어 용량 변경을 알려주어 용량이 달라도 더 싼 가격만 보고 선택하는 일이 줄고, 용량당 가격이라는 정확한 지표를 통해 기업 간의 공정한 경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슈링크플레이션을 규제하면 결국 가격이 오르게 되면서 인플레이션을 부추긴다는 목소리도 존재하지만, 학계에서는 양이 줄어든 것 자체가 이미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것이라고 보는 분위기이다.

한국소비자연맹 관계자는 “교묘하게 양을 줄이는 것은 소비자에게 속은 느낌을 주고, 이는 기업의 신뢰를 떨어뜨리기에 장기적으로는 양쪽 모두에게 좋지 않은 방식”이라고 말했다.

또 “매장에 안내판을 붙이는 등 소비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방향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