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신임 이사 임명에 제동을 걸자 여권과 보수 법조계 및 학계에서 "삼권분립의 훼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6일 방문진 권태선 이사장 등이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낸 신임 이사 임명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 방통위가 임명한 새 이사들은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취임할 수 없게 됐다.
재판부는 신임 이사 임명 시 현 이사진이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는다고 판단했으며, 야권에서 계속 위법성을 주장해온 이진숙 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 2인 체제에서의 의결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도 다툴 여지가 있다고 적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보수 성향의 법조계·학계 관계자들은 "법원이 인사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 법원장 출신 법조인은 27일 "행정기관 임명권 행사는 재량행위로서 위법이 명확하지 않은 이상 존중돼야 한다"며 "이번 결정은 사실상 법원이 신임 이사를 해임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가져왔고, 법원이 정치적 고려로 인사권을 행사한 격"이라고 우려했다.
문재인 정부 때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과 고대영 KBS 사장, 강규형 KBS 이사의 위법한 해임에 대해 집행 부정지 원칙을 고수해 일단 이들의 집행정지 신청은 모두 기각하고 본안에서 해임을 취소한 사례도 들었다.
이어 "고영주 이사장 사건에서 법원은 '잔여 임기가 남았다 하더라도 해임으로 인해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는데, 이번 재판부는 신청인 임기가 만료됐음에도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했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도 "헌법적으로는 삼권분립 위반이고, 기간이 만료된 이사들을 법원이 재임용한 꼴이라 사법권의 본질적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며 "법리적으로도 신청인들이 임기가 만료돼 소송 이익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또 "방문진 이사진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에 비춰봐도 법원의 이번 결정은 기존 이사진을 그대로 재임용한 거라 스스로 논리적 모순, 순환논법에 빠진 것이며 보충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즉각 항고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방통위 고위 관계자도 "재량행위인 인사권에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있지 않은 한 무효가 있을 수 없다"며 "행정부 인사권에 입법부가 노골적으로 간섭했고 그에 법원이 동조한 꼴이라 삼권분립 원칙이 위반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야권에서는 줄곧 지적돼온 '2인 체제'의 문제점이 결국 터진 것이며, 전날 법원 결정이 그것을 명확하게 확인해준 것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기자 출신 김정섭 성신여대 문화산업예술대학원 교수는 "방통위 설치법의 제정 취지가 5인 합의제라는 점을 다시 상기해야 한다"며 "특히 미디어 분야는 행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으로는 민주주의 실현에 위해가 된다고 보고 여야 정치적 다양성을 충족하도록 5인 체제를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것을 항고하고, 본안까지 지켜보자고 할 일이 아니라 여야 대표가 만나 조속히 5인 체제를 복원하는 데 힘써야 하며 방통위 문제가 정치 복원의 상징적인 시작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성명에서 "이제라도 방송법 개정에 동참하고 언론자유와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라는 것이 이번 결정에 담긴 본질적 의미"라고 밝혔다.
민주언론시민연합도 "법원에서 여러 번 지적된 위법적 2인 체제 의결을 다시 내세운 방통위의 공영방송 이사 임명 강행이 방송 장악용 무리수였다는 사실이 법정에서 재차 증명되며 헌법 가치를 지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