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측이 미국 내 반도체와 청정에너지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기업에 지급한 보조금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바이든 행정부와의 보조금 협상에 차분히 대응하되 내년 트럼프 2기 집권 이후 달라질 정책 변화도 예의주시한다는 입장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바이든 정부와 보조금 지급에 관한 예비거래각서(PMT)를 체결하고 협상을 진행 중이다.
반도체법에 의거해 삼성전자는 64억달러의 보조금을 받고, SK하이닉스는 최대 4억5천만달러의 연방 보조금과 정부 대출 최대 5억달러, 최대 25%의 세액 공제 혜택 등을 받는 것이 결정됐으나 아직 최종 계약은 체결되지 않은 상태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총 45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고,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인공지능(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기지 건설에 38억7천만달러를 투자할 방침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당선인 취임(1월20일) 전까지 기업에 약속한 반도체 지원금을 최대한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 상무부는 26일(현지시간) 인텔에 최대 78억6천500만달러(약 11조원)의 직접 자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다만 인텔의 투자 지연 등으로 당초 합의(85억달러)보다는 감액됐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정부효율부(DOGE)를 이끌 비벡 라마스와미가 엑스(X·옛 트위터)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정권 인수 전에 지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감사관이 이런 막판 계약을 면밀히 조사하도록 권고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국내 기업들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당장 현재 진행 중인 보조금 협상에 차질을 빚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면서도 그동안 트럼프 당선인 측에서 반도체 보조금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 온 만큼 향후 상황 변화에 대한 대응책을 고민하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보조금 지급에 대해 재검토를 할 수는 있겠지만 우선은 원론적인 얘기로 보고 있다"며 "일단 미국 정부와의 협상에 성실하게 응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고 지금 당장 영향이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식 취임 전에 으름장을 놓는 수준 아니겠느냐"면서 "반도체법에 근거해 미국 정부와 보조금 관련 계약을 체결하는 것인 만큼 새로운 검토를 할 수는 있겠지만 법 개정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전에도 반도체 지원법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며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를 대안으로 내놓기도 했다.
이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 기간 서둘러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트럼프 정부까지 (협상을) 끌고 갈 경우 (보조금이) 더 많이 삭감될 수 있다"며 "인텔이 바이든 정부로부터 원래 받기로 한 금액보다 규모를 줄여 보조금을 확정한 것처럼 우리도 두달 내로 보조금을 받고 마무리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만약 트럼프 정부 집권 이후로 보조금 지급이 미뤄질 경우 미 정부에 반도체 보조금의 당위성을 적극 어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 기업이 미국 내 투자를 하는 것이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삭감 금액이 그렇게 크지 않을 수 있다"며 "우리 기업들이 미국 정부와 협상 과정에서 투자에 대한 당위성, 미국 정부 입장에서의 투자의 필요성 등의 의사 전달을 많이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업평가(한기평)는 최근 보고서에서 "자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설비 구축은 산업 패권 확보에 중요한 과제인 만큼 반도체 지원법이 전면 폐기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대통령의 행정 권한에 따라 미국 반도체 업체에 대한 지원 비중을 더 높이거나 동맹국을 대상으로 가드레일 조항 및 보조금 지원을 위한 제반 요구 조건을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