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짜릿하고 아슬아슬한 뮤지컬.
지난 주말 드디어 베일에 가려진 뮤지컬 <살인마 잭>의 실체를 파헤칠 수 있었다. 1888년 4명의 매춘부를 살해하고 미스터리 속으로 사라진 한 살인마의 실화를 바탕으로 그린 작품이라는 것과 안재욱이 출연한다는 것만 알고(솔직히 개인적으로 안재욱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열광적인 안재욱 팬의 '이기적인' 추천으로 이날 공연을 택했다) 극장을 찾았다.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안재욱 팬클럽에서 보낸 화환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 팬클럽에서 보낸 화환이 눈에 띄었고, 극장에는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 온 팬들도 있었다. 원조 한류스타 안재욱의 인기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살인마 잭>은 처참한 살인극을 다룬 작품이지만 보고 난 후에는 오히려 행복하고 가슴이 따뜻했다. 조금 아이러니컬하게 들릴지 모르는 그 이유를 지금부터 자세히 들어보라.
◈ 탄탄한 이야기 구성
우선 극의 짜임새가 탄탄하고 군더더기 하나 없었으며,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시간 교차적 구성은 그 맛물림이 깔끔했다. 특히 잇달아 일어나는 살인과 그 실체를 파헤치고자 하는 마약 중독자 형사와 특종만 노리는 기자, 갑자기 나타나 살인자를 제보하는 의사... 극을 보고 있노라니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그 미스터리한 실체가 더욱 더 궁금해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 단순하면서 변화무쌍한 회전무대
무대 배경은 회전무대와 평면 배경 2개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단순한(?) 형식을 취했다. 그러나 그 회전무대의 매력은 실제로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을 것이다(공연 초반 앞 좌석에 앉은 관객들은 높은 회전 무대가 잘 보이지 않아 원성도 많았다고 하지만, 중간 정도에 앉은 나로서는 잘 보여서 다행이었다). 매춘부가 사는 거리, 살인이 일어나는 어느 구석진 길모퉁이, 의사 다니엘의 실험실 등은 모두 다 이 회전무대가 돌아가면서 미묘한 각도와 조명으로 새로운 분위기와 장소로 거듭난다. 참으로 역동적이고 판타스틱한 무대었다.
◈ 배우들의 가창력과 연기력 일품
글로리아 역의 최유화, 다니엘 역의 안재욱, 잭 역의 김원준, 기자 역의 남문철, 앤더슨 역의 유준상, 폴리 역의 백민정 등은 가창력과 연기력 모두 갖춘 최고의 배우들이었다. 스타 캐스팅에 대한 안 좋은 인상 때문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배우들의 가창력과 연기력 모두 인상적이었다. 특히 글로리아는 발랄하고 청순한 소녀에서 매독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중년 여인의 모습 등 서로 다른 모습을 생생하게 연기해 냈고 글로리아의 죽음 앞에 절규하는 안재욱의 눈물 연기에 가슴이 뭉클했다. 당장이라도 일을 낼 것 같은 김원준의 살인마 연기는 그야말로 서슬퍼런 칼날 같이 소름이 돋았다.
참고로, 특종만을 쫒는 남문철의 기자 역도 호감가는 캐릭터였다. 극악무도하다거나 지고지순한 극단적으로 한 면만을 강조한 캐릭터가 아닌 선악이 공존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살렸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자 형사와 계약하는 이기적인 면을 좀 더 부각시킨 인물로 좀 더 현실에 가깝다고 느껴져서 일까.
이 밖에 뮤직넘버는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지만, 순간순간 그 상황에 잘맞는, 감성을 자극하는 참 적절한 뮤직넘버였다는 인상만은 남아있다.
◈ 인간 내면 재조명해
하지만, 나를 가장 흥분케 했던 것은 잇따라 일어나는 반전에 반전. 그리고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 심리를 보이는 상황을 통해 표현했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미스터리로 남겨진 연쇄살인사건이지만, 그것이 무대 위에서 공연되어질 때는 결과가 오픈됐다. 오픈 된 결과를 미스터리로 몰고가는 극 처리가 마음에 들었고, 더욱이 영혼 깊은 곳에 있는 선과 악, 사랑과 미움, 선행과 욕망 등을 다니엘과 잭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다시 보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어찌보면 '정신분열'이라는 극적인 소재이긴 하지만, 현실에서도 우리는 항상 두 모습뿐만 아니라 '천의 얼굴 만의 생각'을 갖고 살고 있지 않는가...
내 안의 또 다른 나, 그것이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지라도 별로 두렵거나 피하고 싶지는 않다. 그 추하고 일그러진 모습도 나이니깐.
끝으로 형사가 남긴 한마디가 계속 귓가에 맴돈다. "살인자는 과연 누구인가?"
한편, 뮤지컬 <살인마 잭>은 오는 31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