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박경림의 뮤지컬 도전작으로도 화제가 된 뮤지컬 '헤어스프레이'가 60년대 미국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그 당시의 문화와 유머, 사회갈등을 그대로 들고 한국 관객들을 찾아왔다.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한국공연은 미국스타일을 일부러 한국식으로 바꾸려하지 않았다. 60년대 미국 사회에 만연한 흑백간의 모순과 갈등, 눈에 보이지 않는 빈부의 차이, 계급과 등급으로 인한 차별 등, 이것들이 오늘날 우리의 삶과 문화와 아주 멀다고 생각되는가?
뮤지컬 '헤어스프레이'는 이같은 갈등과 모순을 한 뚱보 여학생의 발랄하고 당돌하며 용기있는 모습을 통해 유쾌하게 그려냈다. '코니 콜린스 쇼'에서 춤추는 게 소원인 뚱보 소녀 트레이시(권소현 분), 그녀는 흑인 동창생 씨위드(최재림 분)로부터 배운 골반흔들기 춤으로 헤비급 몸매를 유연하게 움직이며 화려한 댄스를 선보여 '쇼' 사회자(오프라윈프리 쇼의 오프라윈프리 격) 코니 콜린스(박송권 분)의 눈에 띄어 마침내 그 쇼에 출연하게 된다. 그러나 트레이시는 흑인과 백인간 갈등으로 항의하다 감옥에 갇히게 되지만 역시 극적으로 탈옥하여 볼티모어에서 최고의 댄싱퀸을 뽑는 '미스 헤어스프레이' 선발대회에 출전해 우승하게 된다.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매력포인트를 몇가지 꼽아보자.
◈ 발음, 명칭, 의상 등 미드를 보는 느낌!
트레이시, 엠버, 링크, 씨위드… 이 이름은 결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게다가 '코니콜린스쇼'나 '미스 헤어스프레이' 등도 귀에 익은 명칭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극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결코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씨위드의 어머니 모터마우스(태국희 분)는 참으로 캐릭터 그 자체였다. 훤칠한 키와 까만 피부, 외국인이 한국어를 하는 듯한 발음, 게다가 번쩍번쩍거리는 스팽글 의상과 카리스마 넘치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 등은 흑인여성도 울고 갈 정도다.
또한 트레이시의 트레이드마크인 부풀린 머리, 엠버(오진영 분)와 벨마(황현정 분)의 화사하고 우아한 공주같은 의상, 링크 등 남성 출연자들은 록그룹 비틀즈를 떠올리게 하는 말숙하고 슬림한 모즈룩으로 스타일리시함을 강조했다. 이 밖에도 '드림걸즈'를 방불케하는 세 흑인 싱어나 거리와 침실 등을 그린 배경도 60년대 미국을 잘 조명해주고 있다.
◈ 신나는 음악과 안무 종합 세트
뮤지컬 '헤어스프레이'는 노래로 시작해 노래로 끝난다. 그만큼 밝고 경쾌하고 신나는 음악을 많이 선보인다. 귀에 착착 감기는 뮤직넘버는 지금도 '볼티모어~ 볼티모어~'하며 귓가에 맴돈다.
안무도 색다르다. 윗몸을 흔들며 골반을 돌리는 춤, 남녀가 마주 서서 어깨를 흔들며 추는 춤을 비롯 자이브, 라인댄스, 스윙, 트위스트 등 60년대를 휘어잡은 중독성 있는 춤으로 관객들도 저도 모르게 어깨와 엉덩이를 들썩이게 한다.
극 중 트레이시가 '난 매일을 흑인의 날로 만들 거야'라고 했던 천진한 대사가 쉽게 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 배꼽 빠지는 미국식 개그
'헤어스프레이'는 동양인의 함축적이고 보수적이고, 아니면 쑥스러우면서도 밀고 땡기기 식의 애정 표현이 아닌, 좀 더 직접적이고 진솔한 모습으로 남녀의 감정을 그려냈다. 잘생긴 링크에 첫눈에 반한 트레이시가 했던 대사 "종소리 울려~"는 아마도 많은 관객들의 마음 속에 깊이 박혔을 것이다.
장모가 키가 훤칠하고 춤 잘 추는 흑인사위의 엉덩이를 만지는 장면은 가장 '미쿡'스러웠다고 할 수 있겠다. 참으로 모든 관객들의 폭소를 유발했던 인상적인 장면이다.
◈ '헤어스프레이'를 통해 보게 된 것은?
위에서 열거한 이 모든 것을 떠나 '헤어스프레이'의 가장 성공적인 부분은, 60년대 미국을 통해 현재 한국을 재조명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계화, 글로벌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여전히 단일민족 국가의 한계와 문제점을 잘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다문화가정, 외국인노동자, 인종차별 등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고, 배타적이고, 자기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 생각하며, 외모지상주의 극단적인 표현으로 지나친 다이어트 바람, 뚱보에 대한 차별과 천대, 따라서 늘어나는 것은 성형외과와 성형미인뿐. '개성, 개성'을 외치지만 어느날 내가 어느 누군가와 닮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이쯤하면 '미녀는 괴로워' 극 중 한 대사가 떠오르지 않는가? "성형한 여자? 내 여자만 아니면 되지". '헤어스프레이' 속 트레이시는 뚱뚱해도 개성 있고, 깜찍하고 귀여운 캐릭터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뭇 남성들이여, 현실 속 뚱뚱한 여자에 대한 시각이 트레이시를 바라보는 시각과 같을 수 있을까? 또한 여성들이여, 당신이 트레이시와 같은 뚱뚱한 몸매, 못생긴 외모를 가졌다면, 그러한 외모에 낙심하지 않고 개성 있는 나만의 색깔로 인생을 펼쳐나갈 자신이 있는가?
많은 것을 쓰려고 했지만 또 너무 많은 것을 놓친 기분이다. '백문불여일견'이라고 한 번쯤 직접 극장을 찾아 '헤어스프레이'의 매력을 확인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