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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여의도 '노사공동 재취업지원센터'(김정태 소장) 대 강의실에서 굵직한 중저음 목소리들이 동요 '산토끼 토끼야'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 팻말을 보니 중장년을 대상으로 하는 '자기 동기 부여법과 목표관리 기법' 특강시간이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50명이 넘는 중장년 층이 강의를 듣고 있었다. 강사가 성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냐고 질문을 던지자, 청강자들이 적극적으로 "실천" "창조와 선동" "일을 즐기는 자세" 등의 대답을 외쳤다. 참석자 절반은 강의내용을 공책에 열심히 필기했다.
여의도에 위치한 이 곳 노사공동 재취업지원센터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노총이 공동운영하고 노동부가 지원하는 곳으로, 재 취업을 준비하는 구직자들을 돕는 곳이다. 서울 여의도 센터가 본점이고, 서울강남·경기수원·부산 지부가 있다.
여의도 센터가 주로 역점을 두는 업무는 재취업 컨설팅과 창업컨설팅이다. 이곳에는 15명의 컨설턴트가 상주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대일로 맞춤 컨설팅을 제공한다. 이와는 별도로 경력설계, 자가 역량분석, 면접전략, 창업 가이드, 컴퓨터 활용능력 등 다양한 주제강의가 매일 2~3강씩 제공된다. 센터 내에는 30여대의 컴퓨터가 항시 이용할 수 있게 비치되어 있다. 구직자들은 이 모든 서비스는 6개월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이날 기자가 참석했던 강의는 인기가 높은 강의로, 평균 강의참석인원 20명을 훨씬 상회한 55명 정도가 참석했다. 강의가 공식적으로 끝난 후에도 앞자리에 앉았던 청강자들이 질문을 계속했고, 대부분의 참석자가 남아 토론을 이어갔다.
◆ 좌절보다는 '열정적 도전'
이곳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직장 잃은 사람들의 좌절감보다 새 직장을 찾으려는 열정이 더 우세하다. 자발적으로 컨설팅을 신청하고 이곳까지 와서 강의에 참석한 사람들이니만큼 적극성이 높다.
요즘 들어 재취업센터에 매일 나오고 있는 김현중(55·가명)씨는 LG그룹 중견간부 출신으로, 생산기술분야 전문인력이다. 그는 최근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땄고, 곧 전기기사 자격증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건물관리소장직종으로 재취업해 적어도 60대 후반까지는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경제적인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은 일을 해야 살 수 있다. 더군다나 은퇴적령기는 실제로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라고 말했다.
회계 및 기획업무에서 16년 근무한 장대훈(40·가명)씨는 이곳을 통해 전혀 새로운 '조선해양 기술'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해온 경력이 짧지 않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도 쉬운 선택은 아니었지만, 이 센터에서 제공해주는 프로그램들이면 새로운 도전도 가능하다 싶어 결단했다. 그는 "재취업 뿐만 아니라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적성에 안맞아 이직을 고려하는 사람들도 이곳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진작 여기를 알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정도"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열정과 실력에 비해 취업문은 상대적으로 좁다. 고령자일수록 더욱 그렇다. 2009년 여의도 재취업센터를 거쳐간 사람들의 재취업률(서비스 시작일부터 6개월 이내 성공자)은 20대가 41.9%였고 30대가 37.7%, 40대가 35%, 50대가 32.7%, 60대 이상이 29.7%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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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공동 재취업센터에서 구직자가 상담을 받고 있다. ⓒ윤현규 기자 hkyoon@ |
◆ 높은 열정, 낮은 취업문
2005년 이 곳 센터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컨설턴트를 해 온 홍제희 컨설턴트는 "이곳에 찾아오는 준고령자들의 열정이 뜨거운 데에 반해 기업들은 입사 나이를 제한한다. 이 부분이 너무 아쉽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50대 사원을 선발할 의지가 있는 기업은 10개 중 1~2개에 불과하다.
◆사회전체적 연계 필요해
그럼에도 취업에 성공하는 준고령자들의 공통적 열쇠는 결국 '마음가짐'이라고 홍 컨설턴트는 설명했다. 아울러 "사회를 탓하고 국가를 탓하면 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은 어떻게든 성공하신다"며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홍 컨설턴트는 "준고령자들 재취업을 국가나 기업 혹은 개인이 각각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국가가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기업이 따라가지 않으면 소용없고, 국가와 기업이 협력해도 구직자 개개인의 의지가 없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LG그룹 중견간부 출신 김현중(55·가명)씨는 이와는 좀 다르게 "은퇴자 활용 프로그램을 정책적 차원에서 강제적으로라도 만들어서 시도했으면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퇴직한 50대 이상의 준고령자들의 지식과 경험을 썩히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이고, 특히 전문기술인력 은퇴자들은 중소기업에 큰 힘이 될 수 있는 그룹이라고 강조했다.
회계 및 기획분야 16년 경력인 장대훈(40·가명)씨는 "구직자들이 목표와 방향정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재취업센터와 같은 기관을 찾아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하라"고 제안했다. 10년 가까이 구직자를 대상으로 컨설팅을 해온 홍제희 컨설턴트도 "재취업을 위해서는 열심도 중요하지만 방법적인 면도 중요하다. 지원기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지혜"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