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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국내 기부문화…'수천억' 낸다더니'말뿐'

미국의 억만장자 40명이 자신의 재산 가운데 절반 이상을 사회에 기부하기로 약속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앞장서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기부액을줄이는가 하면 비자금 사태로 ‘사회적 약속’을 했지만 단순한 말장난에 머물고 있다.

◆ 40명이 1500억달러 기부 약속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투자회사 버크셔 헤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이 출범시킨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기부약속)’는 4일(현지시각) 발표한 성명에서 게이츠와 버핏을 포함한 40명의 억만장자가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이번에 재산 기부를 약속한 40명의 재산의 50%를 합친 규모가 최소 1500억달러(약175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재산기부 약속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더 기빙 플레지’의 홈페이지에 자신의 재산기부 의사를 밝히는 서한을 공개함으로써 후손들도이러한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도덕적 책무를 부과하는 형식을 취했다.

게이츠와 버핏은 지난해 5월 뉴욕에서 열린 미 억만장자들과의 비공개 만찬 모임에서 ‘기부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해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이상 재산을 가진 미국의 400대 부자에게 재산의 최소 절반을 자선단체에 기부한다는 서약을 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 국내기업, 기부액 크게 줄여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처럼 거액의 기부금을 선뜻 내놓는 부자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4월 금융감독원의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10대 대기업 중 7곳은 지난해 기부금을 2008년에 비해 크게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에 이어 올 2분기에도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삼성전자는 2008년 문화복지, 공익사업 등으로 1389억원의 기부금을 제출했지만 지난해에는 28% 가량 줄어든 995억원을 냈다. 한국전력과 현대중공업도 각각 305억원에서 156억원으로, 362억원에서 191억원으로 절반가량 줄였다.

현대자동차는 2008년 276억원에서 561억원으로 2배 이상 늘렸다. 그러나 정몽구 회장이 2006년 비자금 조성 혐의로 8400억원의 사회공헌 기금 출연을 선고받았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2007년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았지만 “사회공헌활동은 예정대로 진행하고 사회봉사도 자발적으로 수행하겠다”고 밝혔던 만큼 ‘말 뿐인 사회 공헌’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8일 한국재정학회가 기획 재정부에 제출한 ‘기부금 세제지원개선방안’에 대한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소득이 6000만원 이상~8000만원 이하인 계층이 소득금액 1000원당 기부금액이 20.1원으로 기부금을 가장 많이 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 부자에 대한 인식은 그리 곱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4월 이뤄진 한 조사에서 82%가 부자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지 않으며, 91%가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답했다. 이러한 대중의 인식은 다시 기부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1억 이상 개인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를 운영하고 있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실명 기부문화를 확산시키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모금회 측은 “익명으로 기부하려는 사람들을 실명으로 기부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며 “대부분의 기부자들은 기부금 액수가 아니라 기부금을 낸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