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모습이 시대적 흐름에 의해 변천하고 있다. 과거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에 국가 재건을 위한 '불도저식 리더'가 필요했다면, 경제성장을 이룩한 현재는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소통하는 리더'가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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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홀딩스 최은영 회장 |
지난 17일에는 경기도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자들을 초청해 함께 관람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한진해운이 지난 7월 개장한 스페인 남부 지브롤터해협의 알헤시라스에 전용터미널을 연 것을 계기로 한-스페인 수교 60주년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소장품 전시회 후원에 나선 것.
최 회장은 한진해운 경영을 시작할 당시 주위로부터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경영에 접목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이에 '예술 경영'으로 임직원·고객들과의 소통을 이끌어 내고 있다.
그는 정기적으로 직원들과 저녁 자리를 갖고, 시간이 될 때마다 미술전시회 혹은 뮤지컬 공연 관람을 하고 있다. 와인동호회 등의 사내 동호회에 참석하기도 하고, 임신한 여직원 및 신입사원들과는 꼭 식사를 같이하며 격려한다. 또 최근에는 여의도 본사 사옥 입구에 걸려 있는 대형 미술 작품을 스티브 맥커리의 작품으로 바꾸면서 이 작품을 보고 느낀 점을 적어낸 직원 5명을 선발해 식사를 함께 하며 미술에 관한 얘기도 나눴다.
물론 이번 간담회 자리는 그동안 기자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려했던 최 회장을 위한 사측의 '배려'이기도 했다. 최 회장의 성공적인 '감성 경영'을 내세으며,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한진해운을 언론에 자연스럽게 노출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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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17일 낮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출입기자들과 함께 스페인 작품전을 관람하고 있다. |
이날 최 회장은 지난달 15일 스페인 알헤시라스에서 개장한 스페인 최대 규모의 터미널 개장에 설명하며 "한진해운이 동서 항로는 강한데 남북은 상대적으로 그러지 못했는데, 알헤라시스는 지중해와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거점으로서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최 회장은 올 하반기 실적과 관련해 "해운은 3분기가 성수기이기 때문에 실적은 더 좋아질 것"이라면서 "2분기에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U자형 회복이 아니라 V자형 회복세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유럽시장이 성수기에 들어서는 것과 2분기 실적 향상에 기여했던 컨테이너선의 물동량이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는 것 등을 실적 호전 전망의 이유로 들었다.
최 회장은 경기 호전을 타고 글로벌 해운사들이 공격적으로 배를 발주하고 있는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의견도 밝혔다. 그는 "머스크처럼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회사는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발주를 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에버그린의 컨테이너선 100대 발주는 숫자를 늘리는 의미라 크게 위협으로 여기진 않는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은 1만3000TEU 규모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9척, 1만TEU 7척을 보유할 예정이라 배의 숫자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특히 최근 재무구조 개선 약정 체결을 놓고 채권단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에 대한 언급으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현 회장과 최 회장은 비슷한 점이 많다. 대표적인 여성 오너 경영인으로, 두 사람 모두 작고한 남편을 이어 회사 경영을 이끌고 있다. 주력 업종도 해운이다.
최 회장은 "해운업은 국내 매출이 6%에 불과하고 전 세계를 상대로 싸우는 업종으로 밑바닥에서 세계 8위 해운국 위치까지 올라왔는데, 경영권 안정에 대한 문제는 집안(현대가) 내에서도 도와줘야 한다"며 "현정은 회장님이 나보다 먼저 경영에 참여하시고 잘 아시니까 잘 해결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한진그룹이 지난해 9월 산업은행과 2011년 말까지 유지하기로 한 재무구조개선 약정에 대해서는 "올 하반기에는 재검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작년의 열악한 상황을 이겨내고 올해는 최대 호황기로 꼽히던 2008년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기에 올해 말 채권단에서 재검토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상황에 따라 올해 말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졸업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최근 두 자녀와 함께 보유 중인 대한항공 주식 일부를 매각한 것과 관련해서는 "계열 분리와는 관계없다"고 선을 그었다. 최 회장은 "상속받은 것을 주가가 올라 투자개념으로 판 것"이라며 "향후 대한항공 주식을 모두 팔 수도 있지만 이는 지분경쟁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나는 아주버님이라고 하고 조양호 회장님은 제수씨라고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최 회장이라고 하시더라. 그는 실질적으로 독립 경영을 하고 있지만 형식적인 경영 분리도 준비하고 있다며" 조양호 회장으로부터 그의 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있음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