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황궁 안에 있는 동어화원(Eastern Imperial Garden). |
러일 전쟁의 승리로 일본은 여순(旅順)에서 장춘(長春)까지 700km 가 넘는 철도관리 이권을 얻었고 1906년에는 남만주 철도 주식회사를 세웠다. 이것은 일본의 만주침략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그후 일본은 중국정부에 만주에서의 이권을 점차 강하게 요구하였다. 만주를 완전 점령하는 계획을 세운 일본군은 1931년 9월 18일 밤 10시, 오늘날 심양시 외곽인 유조구(柳條溝)에 있는 철도를 폭파하고 이를 만주의 군벌인 장학량(張學良)의 소행이라는 구실을 만들어 즉각적인 군사행동을 일으켰다. 일본군은 11월에는 북만주의 치치하얼, 1932년 2월에는 하얼빈을 점령하였고 이어서 만주 전체를 점령하였다. 이와 함께 일본은 정치적으로 만주를 완전하게 통치하기 위해서 만주에 괴뢰국가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일본은 만주군벌들을 앞세워 동북행정위원회를 조직하게하고 1932년 3월1일에는 건국선언을 발표시켜 만주에 있는 중국인들이 스스로 독립한다는 형식을 갖추게 하였다. 한편, 일본은 천진(天津)의 일본인 조계(租界)에서 망명중이던 청(淸)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부의(溥儀)를 1931년 11월에 비밀리에 만주로 데려와서 1932년 3월 9일에는 집정(執政) 취임식을 거행하여 새로운 국가 원수로 만들었고 수도는 신경(新京;오늘날의 장춘)으로 정하였다. 이렇게 만주국(滿洲國)은 형체를 갖춘 독립국이 되었고 일본의 괴뢰국가가 된 것이다. 중국은 일본의 군사행동을 국제연맹에 제소하여 국제연맹에서는 조사단을 일본에 파견하였으나 조사단이 도쿄에 도착한 다음날 만주국이 건국되었다. 부의는 3세의 어린 나이에 1908년, 광서제(光緖帝)의 뒤를 이어서 황제(皇帝)로 즉위하였으나 신해혁명의 결과로 1912년에 제위에서 물러났다. 그 뒤 일본의 도움으로 만주국의 집정관이 되었고 이어서 1934년 3월에는 만주국의 황제가 되었다. 황제가 되면서 그는 연호를 강덕(康德)이라고 정하고 황궁(皇宮)은 장춘시의 동북부에 건설하였다. 만주국은 일본이 중국침략을 위해 세운 일본의 꼭두각시 괴뢰국가로서 조선, 일본, 중국, 몽고, 만주의 오족협화(五族協h和)를 기치로 내걸었으나 실제 권력은 일본의 관동군 사령관이 갖고 있었다.
부의가 살았던 위황궁(僞皇宮)은 면적이 13.7ha(약45,000평)로서 정무를 보던 외정(外庭)과 생활을 하던 내정(內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늘날은 박물관으로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광복북로(光復北路)에 면한 정문을 통해 들어가면 왼쪽 끝에 황제를 호위하던 군인들이 숙영하던 막사들이 나타난다. 그 오른쪽에는 부의가 말을 타던 거대한 경마장이 있고 경마장 바로 북쪽에는 온실이 있다. 궁정화실(宮廷花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길이 120m, 폭 20m 에 달하는 큰 온실이다. 온실 안에는 열대 화초를 포함하여 온갖 종류의 화초가 계단식 보관대에 올라가 관리되어 만주의 추운 겨울에도 끄떡없이 잘 자라고 있다. 온실을 나와서 경마장 북쪽을 따라서 동쪽으로 가면 흥운문(興運門)이 나온다. 이 문을 따라서 좁은 도로를 걷다보면 식수헌(植樹軒)이라는 조그마한 단층 건물이 나오는데 이곳은 부의가 식사 뒤에 책을 읽으면서 쉬던 곳이다. 만주국 건국 초기에 만들어진 이 집의 뒷방에 있던 금고 안에 부의는 갖고 있던 금, 진주, 보석, 돈을 넣어 숨겨두었고 정광원(鄭廣元)과 결혼한 뒤 이곳에서 생활하기도 하였다. 바로 이 앞에는 서어화원(西御花園)이라는 조그만 정원이 있는데 이곳에는 흑룡강성, 요녕성, 한반도에 걸쳐 생육하는 단풍나무(Aceraceae Acer spp.)를 포함하여 여러 수종의 관목이 조그만 연못 주위에 자라고 있다.
위황궁 안에는 두 개의 정원이 있는데 서어화원은 위황궁의 서쪽에 있는 정원이다. 물론 부의를 포함한 황족만이 즐기던 황실정원(Imperial Garden)이다. 서어화원의 바로 동쪽에는 근민루(勤民樓)와 집희루(緝熙樓)가 있다. 근민루는 부의가 만주국의 황제로 즉위하던 곳으로서 부의는 이곳에서 정무처리, 식전(式典)거행, 내빈접대 등의 행사를 하였다. 집희루는 부의가 청(淸)왕조의 회복을 바라는 뜻에서 그 이름을 지었고 이 건물에서도 정무를 처리하였다. 오늘날,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이 건물들 안에는 당시 만주국을 다스리던 일본군 사령관과 만주국 정치인들이 밀납 인형들로 전시되어 있다. 이곳을 나와서 동쪽으로 가면 부의가 정무에서 벗어나 생활과 오락을 하던 동덕전(同德殿)이 나온다. 1938년에 완공된 이 건물 아래층에는 영사실도 있어 부의는 이곳에서 당시의 유명한 영화를 감상하였다. 영사실 옆에는 천정이 높은 넓은 홀이 있는데 이곳은 연회를 열던 곳으로서 1988년에 개봉된 영화 ‘마지막 황제(Last Emperor)'의 한 장면은 이곳에서 촬영하였다. 필자는 이 영화를 1988년, 싱가폴의 극장에서 관람하였는데 그 뒤 20년이 지나서 영화의 촬영현장을 와서 보니 새삼 역사의 한 장면이 겹쳐져서 다가옴을 느꼈다.
동덕전 입구를 나오면 큰 정원이 펼쳐져 있는데 이곳이 동어화원(東御花園)이다. 서어화원과 달리 이곳은 식물원처럼 넓고 각종 수목과 화초가 심어져있다. 중국인들이 흑송(黑松; Pinaceae Pinus thunbergii)이라고 부르는 소나무와 흑룡강성, 길림성에서 자라는 동북홍두삼(東北紅豆杉; Taxaceae Taxus cuspidata)을 비롯하여 장미과에 속한 관목들과 각양각색의 화초들이 정원을 메우고 있다. 황궁 안에 대규모의 온실과 큰 정원이 두개씩이나 있는 것을 볼 때 부의는 식물학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온실의 규모와 동어화원의 규모를 볼 때 어느 식물원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곳을 ‘마지막 황제의 식물원’이라고 나름대로 부르는 것이다. 일본이 전쟁에 패하자 만주국도 따라서 패망하고 부의는 연합국(소련군)에 포로가 되었고 이어서 중국으로 송환되어 공산당 교화소에서 수년간 개조 교육을 받는 뒤에 풀려나 일반 시민으로 살다가 1967년에 세상을 떠났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인생 부귀영화의 허무한 종말점을 확인하면서 필자는 동어화원을 뒤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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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농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이건산업에 입사해 이건산업(솔로몬사업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파푸아뉴기니 열대 산림대학을 수료했으며, 대규모 조림에 대한 공로로 솔로몬군도 십자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등이 있다.
권주혁 이건산업 고문·강원대 산림환경과학대학 초빙교수 |
권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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