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반 대기업 정서를 가지고 있거나 이와 관련한 입법 움직임을 보이는 정치인 명단을 작성하고, 이들에 대해 주요 대기업을 배정해 접촉할 것을 요구하는 문건을 작성해 논란이 일고 있다.
5일 전경련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 전경련은 각 대기업 사회공헌 실무 임원들과 사회공헌 사업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는 가운데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자료를 만들어 당시 참석자들에게 배포했다.
이 자료에는 사회공헌 사업을 위한 기금을 마련에 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정부나 정치권의 대기업 정책 동향 및 대응 방안도 포함됐다. 국회의원 전원과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 김효재 정무수석, 김대기 경제수석은 전경련이 직접 맡고, 삼성, 현대차, LG, SK, 롯데 등 주요 그룹에는 여야대표, 각 상임위원장과 간사 등을 맡도록 배정하기까지 했다.
또 국회가 대기업 총수를 증인으로 채택하면 원칙적으로 출석하지 않고 해당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대신 나간다는 방침 등이 문건에 담겼다.
뿐만 아니라 체감경기 양극화 심화와 대기업 때리기가 표심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맞물리면서 반 기업 입법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이런 정책의 입법 저지를 위해 여야 지도부와 주요 상임위원회 간부 등에 대한 로비를 강화하자고 제안하면서 주요 그룹별로 접촉할 정치인 리스트를 할당했다.
특히 지식경제위, 환경노동위, 국토해양위, 기획재정위 등 4개 상임위를 중심으로 로비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경련은 이들을 상대로 개별 면담과 후원금, 출판기념회, 지역구 사업ㆍ행사 후원을 통해 지원하고 의원의 지역 민원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라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전경련이 각 기업에 로비 대상을 직접 할당하고 구체적인 로비 방법을 제시한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라는 반응이다. 또한 기업이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제공하고 지역구 행사를 지원하는 것이 현행법상 불법이란 점에서 이러한 전경련의 주문은 큰 파문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경련 관계자는 기업별 로비 문건과 관련해 "사회공헌 회의를 준비하면서 실무자 차원에서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임원들에게 보고가 되지 않은 내용"이라며 문건 작성에 대해서는 시인하면서도, 로비사실에 대해서는 완전히 부인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전경련 및 기업의 로비 사실에 대한 조사가 각계에서 요구될 것으로 보이며, 전경련의 생각과는 반대로 대국민들의 반기업 정서도 이전보다 한층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