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세계 경제가 각종 악재로 인해 출렁이고 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은 부채 상한 증액으로 간신히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넘기는가 했더니 예기치 못한 국가신용등급 강등 충격과 더블딥 우려에 몸살을 앓고 있다. 유럽도 그리스에 이어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재정 위기설로 혼란스럽다.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과 유럽의 불안은 산업계에 큰 악재다. 또한 국내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롤러코스트를 타는 총체적 난국에 빠진 것도 하반기 산업계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높아지면서 각 기업과 업종에도 비상이 걸렸다.
특히 상반기 동안 실적 부진에 허덕였던 전기전자·IT 업종 등은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 하반기 실적이 상반기보다 더 나빠질 것으로 보이고,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약진을 거둡하고 있는 자동차 업종도 주요 시장인 미국과 유럽의 경제 위기로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수출기업들은 환율에 따라 수익이 큰 폭으로 오르내리기에, 불안정한 환율도 기업들에게는 큰 짐이다.
이런 가운데 주요 기업들은 하반기 경영 계획을 전면 수정하거나 투자 계획을 대폭 변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대체적으로 차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급변하는 세계 경제 환경을 예의주시하면서 그 파장을 분석하느라 골몰하고 있다. 또 원가절감 방안과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전략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 전자·정유 '프리미엄 제품으로 정면 승부'
전기전자 업계는 일단 하반기 경영전략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경기 악화가 우려되는 선진 시장의 경우는 프리미엄 제품 중심으로 시장 주도권을 유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 경제 위기 속에 하반기 PC, TV 등 완제품의 수요 회복은 더 더뎌지고,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분야도 국내외 업체 간 경쟁이 심화해 어려운 경영 여건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격이 바닥세인 반도체 분야는 20나노급 등 미세공정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액정표시장치(LCD)는 이윤이 많이 남는 프리미엄 제품 판매를 확대함으로써 활로를 모색기로 했다.
통신은 스마트폰의 시장 점유율을 극대화하는 한편 보급형 라인을 확충하고, TV 시장에서는 발광다이오드(LED) TV, 3D TV 등 프리미엄 제품의 판매 비중을 높여 나간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직 특별히 경영 전략을 수정할 계획은 없다"며 "올해 23조원으로 책정된 투자 계획도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LG전자도 올해 초 목표했던 4조8천억원 규모의 시설 및 연구개발(R&D) 투자를 그대로 집행하기로 하는 등 각종 악재들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LG전자는 TV 시장에서 수요 정체가 지속되겠지만, 6월 세계 모든 시장에 출시를 완료한 시네마 3D TV의 판매가 본격화되면 프리미엄 TV 시장의 주도권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휴대전화는 옵티머스3D 등 프리미엄 스마트폰 판매를 확대하고, 4분기 롱텀에볼루션(LTE) 휴대전화 시장에 대비한다는 전략이다.
환율과 유가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정유업계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위기를 타개할 방침이다.
SK이노베이션은 신시장 개척 등 수출 지역을 다변화하는 한편, 설비 가동 효율성을 높여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도록 하고, 배터리 등 신재생 에너지 사업과 해외 석유개발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에쓰오일도 고도화 시설 및 석유화학 생산 시설의 운영 효율을 높여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을 마련했다.
◇ 자동차·철강 '원가 절감 등으로 경쟁력 높이기'
해외생산과 수출의 비중이 크게 높아진 자동차업계는 원가 절감과 고효율 제품 출시로 가격 경쟁력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현대기아차는 생산설비 증대를 통한 양적 성장보다 지속적으로 질적 성장에 초점을 맞춰 고연비차를 개발하고, 모듈화와 플랫폼 통합을 가속화해 원가 경쟁력을 높여 난국을 돌파한다는 계획이다. 자동차 판매 때도 미국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던 인센티브 확대보다는 구입 후 보장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해 수익성을 높일 예정이다.
세계 경기 흐름에 영향을 많이 받는 철강업계도 투자 계획 변경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유럽발 경제 위기와 금융시장 동향 등을 살피며 이들 변수가 몰고 올 파장과 후폭풍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철강업계는 원료를 수입하는데다 제품 수출 비중도 커 원자재 가격과 환율 변동 등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포스코 관계자는 "투자 계획은 예정대로 추진하면서 원자재가 변동 등에 대비해 원가 절감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건설·해운 '엎친 데 덮친 격... 일단 내실 다지기'
건설업계는 국내 건설 경기 침체로 매출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 세계 경제의 동반 침체로 인한 해외 공사 발주량 감소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특히, 상당수 기업이 해외에서 활로를 찾는 쪽으로 초점을 맞춰 올해 경영계획을 세운 만큼 세계 경기 침체가 더욱 큰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위기가 현실화되면 국내 건설사들의 주요 수익원인 중동의 플랜트 공사 발주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상당수 업체는 이에 따라 최근 대책 마련에 속속 착수했으며 구체적 방안이나 해법이 나오는 대로 하반기 경영계획에도 반영할 계획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느 업종보다 큰 직격탄을 맞은 해운업계는 세계 경제가 다시 휘청거리자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최근까지 물동량 감소, 선박 과잉 공급, 유가 상승 등의 삼중고에 시달려온 해운업계는 올해 하반기에는 미국 경제의 점진적 회복에 따라 손실 폭을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해온 터라 당혹감이 크다. 하지만 노선 합리화, 비용 절감 등을 통해 좌초하지 않고 위기를 헤쳐나간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유통업계와 항공업계도 경영 전략을 곧바로 뜯어고치지는 않고 상황을 지켜보면서 탄력적으로 대응키로 했다. 조선업계는 상반기 이미 올해 목표치의 대부분을 수주한 만큼, 생산성을 극대화해 약 3년분의 수주 물량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건조하고 친환경기술·신제품 개발 능력 등을 특화해 시장을 선점해 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