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규현 기자] 유럽중앙은행(ECB)이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를 직접 매입한 것과 관련, ECB가 물가 관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통화 정책의 한계를 벗어나면서 "루비콘강을 건너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9일 보도했다. 이번 조치로 인해 인플레 견제에 초점을 맞추며 물가 안정에 기여했던 이전의 ECB의 명성과 신뢰도를 잃게 됐다는 것이다.
∇ 국채 매입에 일부 ECB 집행이사회 반발, 갈등 중폭 우려
로이터는 또 "ECB 조치에 대해 집행이사회에서 가장 발언권이 센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며 "채권 매입 프로그램 재개 등을 담은 성명도 이사회가 아닌 장-클로드 트리셰 총재 명의로 발표된 점은, 향후 ECB 결속 회복이라는 또다른 과제를 남겨뒀다"고 지적했다. 이는 이번 조치가 ECB 집행이사회의 전폭적인 지지와 동의를 얻은 것이 아니어서 향후 ECB 내의 갈등이 증폭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 이탈리아 내정 간섭?
가디언은 또 ECB가 지난 일요일 회의를 개최하기 전에 트리셰와 그의 후임자인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 공동 명의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에게 편지를 보낸 것과 관련, "ECB가 이탈리아 국채를 매입하기 위해 필요한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이탈리아 언론이 보도한 것도 ECB의 정치적 개입 시비를 낳고 있다"고 전했다.
이 편지에 대해 이탈리아 야당은 "유럽과 국제사회가 이런 식의 조건을 강요했다는 것은 믿을 수도 ,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이라며 편지 내용을 모두 공개하도록 요구해 이 문제가 정치 문제로 비화될 것임을 예고했다고 가디언은 덧붙였다.
∇ 물가 안정 ECB 명성 신뢰도 타격, 재정도 위험
신문은 로열 뱅크 오브 스코틀랜드(RBS) 분석을 인용해 ECB의 국채 매입 프로그램에 최대 8천500억 유로가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면서, 통상적으로 인플레 견제에 초점을 맞춰온 ECB의 명성 및 신뢰도에 타격이 오고 재정에도 심각한 위험이 야기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전했다.
∇ 국채 매입에 1천억 유로 소요돼야
로이터는 "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120% 수준인 이탈리아 국채를 사는 것과 그리스, 아일랜드 및 포르투갈 국채를 매입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라면서 "ECB가 첫 조치를 취한 8일 20억유로 어치의 이탈리아 국채를 매입한 것이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것'이라고 채권시장 관계자들이 입을 모았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8일 시장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공개하면서 "ECB가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를 매입해 이들 채권 수익률을 안정적 수준으로 다시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1천억 유로를 투입해야할 것으로 관측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