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안진석 기자] 2012년 1∼3월에 온갖 악재들이 집중돼 세계 금융위기에 따른 혼란과 충격이 내년 1분기에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리스 2차 구제 금융안과 유로존 탈퇴에 대한 국민투표가 다음달 이후에 예정돼 있어 사태 추이에 따라서는 세계 금융기관들이 연쇄적으로 부도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3일 증권업계와 민간경제연구소,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다음달 이후 그리스 정부의 2차 구제금융 지원안 수용과 유로존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이뤄지면 여파가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투표의 충격은 291조원에 이르는 유로존 국채 만기연장 어려움→유럽 경기침체 심화→중국의 무역수지 적자→세계적인 공포 확산→한국경제 타격 등의 경로를 밟으며 위기가 내년 1분기에 최고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민투표 결과, 2차 구제금융안이 부결되고 유로존 탈퇴가 결정되면 그리스는 `질서없는' 국가부도 사태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유럽국가 전체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호세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그리스 총리가 제안한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2차 구제금융 지원안이 부결될 경우 그로 인해 초래될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투표가 가져올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칸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 등과 회동한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그리스가 지난달 결정된 구제금융안에 서명하고 국민투표로 인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전까지는 EU와 IMF가 6차분 지원금을 지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은 그리스 정부가 그리스 구제금융 2차 지원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기 전에 그리스 의회가 지원안을 사전 승인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국민투표에서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사전에 차단에 나선 것이다.
이런 가운데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을 모두 합친 유로존의 국채 291조원어치가 내년 1분기(1~3월 사이)에 만기를 맞는 것도 큰 부담이다. 그리스 부도사태는 유로존 국가들이 발행한 국채의 만기 연장을 가로막고 금융기관들의 연쇄부도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김재홍 신영증권 수석연구원은 "안전장치를 마련하기도 전에 그리스가 파산하면 돈을 빌려준 유럽 금융기관들이 채권 손실을 한꺼번에 반영해 도산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마디로, 예금 대량인출과 연쇄적인 부도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 위기가 한고비를 넘겨도 경기 침체로 향하는 절차를 피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은 "그리스가 부도를 피하고 유럽 정상들이 합의한 대책이 계획대로 시행돼도 근본적인 처방이 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그리스가 재정 적자 감축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거나 다른 문제가 발생하면 현재의 계획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더욱이 유럽 국가들이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유동성을 축소하는 강도 높은 긴축에 나서고 있어 내수 부진으로 인한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 당장 내년 1분기부터 유럽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 경제의 버팀목,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으로 비유되고 있는 중국의 무역수지가 이 기간에 적자로 돌아서는 등 중국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지난해 중국의 수출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22%로 미국의 17%보다 높았다.
SK증권이동섭 리서치센터장은 "유럽 경기의 침체로 중국이 내년 초 무역적자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분기에 7%대에 머물 가능성도 있다. 다음 달 발표되는 선행지표들이 신호를 보낼 것이다. 만일 6%대 성장에 머물면 세계 금융시장은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부동산 가격이 계속 하락하고 있어 또다른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메리츠종금증권 박형중 투자전략팀장은 "중국의 수출 둔화보다 우려되는 것은 부동산 버블의 붕괴다.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면 소비와 투자가 위축돼 충격이 클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우증권 서대일 연구원은 "중국 부동산 문제는 경착륙이냐 연착륙이냐가 남아있을 뿐 집값 상승에 따른 소비부양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는 그리스 부도 사태가 없더라도 내년 1분기에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스위스 대형 금융그룹인 UBS는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8%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내년 초에 한국의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끌었던 수출에도 이상 조짐이 나타났다. 지난 10월의 전년 동기 대비 수출 증가율은 한자릿수대(9.3%)로 떨어졌다. 지난 9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월별 평균 증가율은 22.8%였다.
SK증권의 이 센터장은 "국내외 경제상황을 종합하면, 내년 1분기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증권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은 당분간 부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그리스 국민투표는 시한폭탄
그리스의 국민투표 계획은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에 시한폭탄과 같은 불안요인이다.
그리스 정부는 내달 4일 EU정상회의에서 합의된 2차 구제금융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달 4일 내각 신임투표가 예정돼 있고, 국민투표를 할지를 결정하는 의회표결에서 과반수를 얻는 데 실패할 수 있어 어떤 방향으로 사태가 전개될지는 미지수다.
유럽연합(EU) 정상들은 최근 그리스 국채를 50% 탕감해주고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확충하는 해결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리스가 국민투표 카드를 꺼내 들어 이 해결책이 실행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리스가 국민투표를 통해 EU 정상들의 합의안까지 거부한다면 EU의 자금지원이 끊긴다. 그리스는 파산의 순서를 밟을 수밖에 없고 이는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 막대한 타격을 준다.
그리스 파산은 유럽국가들 국가신용 등급의 연쇄적인 강등으로 이어진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아일랜드, 포르투갈의 신용등급을 1~3단계 낮출 수 있다고 최근 경고했다.
◇ 내년 1분기 유럽 국채 만기 집중
유로존의 국채 만기도 내년 1분기에 몰려 있어 부담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내년 1~3월이 만기인 국채 물량은 그리스 230억 유로, 이탈리아 1천300억 유로, 스페인 359억 유로 등 모두 1천889억 유로(291조원)에 달한다.
지난 8월 금융시장 분위기가 급속도로 나빠진 이후 유로존 국가의 국채 만기는 번번이 금융시장의 복병으로 작용했다.
지난 9월 만기를 맞는 이탈리아 국채의 규모가 390억 유로(60조원)로 알려졌던 8월 말에는 '9월 위기설'이 나돌았다. 9월에도 10월 만기 물량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10월 국채 만기 도래 물량은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 4개국에서 모두 952억 유로(약 152조원)에 달했다.
이들 국가는 11월과 12월에도 각각 762억 유로, 695억 유로의 국채 상환이 예정돼 있다.
김재홍 수석연구원은 "유럽 재정위기 해결책이 확실하게 나오면 만기 물량이 많더라도 롤오버(만기연장) 수준에서 해결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 내년 초 중국 무역적자 가능성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국은 최대 수출국인 유럽의 경기둔화로 내년 초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환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예상치에 못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 상무무 부부장을 지낸 웨이젠궈 중국국제경제교류중심 비서장은 "일반적으로 9~10월에 유럽과 미국에서 수입하겠다는 주문이 폭주하지만, 올해는 뚝 떨어졌다. 중국 수출이 가장 힘든 시기를 맞고 있다"고 최근에 말했다.
이동섭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유럽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내년 초에 1% 미만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중국 수출이 유럽 경기에 큰 영향을 받는 점을 고려하면, 내년 1~2월에 무역수지 적자가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수출 둔화 때문에 그동안 안정적으로 지켜온 `바오바(保八, 연 8% 이상 성장)'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외 금융기관 상당수가 이미 중국의 내년 1분기 경제성장률을 7%대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 경제의 최근 10년간(2001~2010년) 평균성장률은 10.5%였고 2001년 (8.3%)를 제외하면 한 해도 9%대를 내준 적이 없다. 잠재성장률도 10% 안팎이다. 따라서 7%대 성장률은 경착륙을 의미한다. 하지만, 올해 3분기에 9.1%를 기록해 4분기에는 8%대를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만약 내년의 무역적자로 이 수치가 8%대 초반까지 떨어지면 시장 충격은 불가피하다. 분기 기준으로 중국 경제성장률이 8% 밑으로 내려간 것은 2008년 4분기(6.8%)와 2009년 1분기(6.5%)가 유일하다.
중국에서는 부동산 문제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면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집값이 폭락할 것이라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규제 정책으로 내년 부동산 가격이 절반가량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외국계 자본은 중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빠져나가는 상황이다.
◇ 한국 내년 1분기에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
내년 1분기에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수 있다.
스위스 대형그룹인 UBS는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8%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1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내년 경기 흐름이 `상저하고(上低下高)'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동섭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내년 1분기에는 유럽 국가들의 마이너스 성장 탓에 리세션(경기침체)이 뚜렷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경제도 성장이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각종 경제지표는 이미 부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경기선행지수 전년동월비 전월차는 지난 7월 0.3%포인트에서 8월 -0.1%포인트, 9월 -0.4%포인트 등으로 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선행지수는 일반적으로 6개월 후의 경기상황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내년 1분기에는 경기상황이 더욱 나빠진다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인 수출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
지난 10월의 전년 동기 대비 수출 증가율은 9.3%로 8월(25.5%), 9월(18.8%)에 비해 크게 둔화했다. 특히 유럽지역의 수출은 작년 동월보다 20.4%나 급감했다.
지난 3분기의 국내총생산(GDP)도 전분기보다 0.7% 증가하는데 그쳐 작년 4분기(0.5%)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