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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총격 여성의원 살린 한국인 의사 피터 리

[재경일보 배규정 기자] 올해 신년이 시작되자마자 일어난 애리조나주 투산의 유망 여성 정치인 총기 피격 사건은 미국을 큰 충격에 몰아넣은 사건이었다.

미국의 대다수 언론사는 1월8일 발생한 이 총기 난사 사건을 연일 주요톱 머릿기사로 보도했다.

머리에 치명적인 관통상을 입고 사명을 헤메는 가브리엘 기퍼즈(40.민주.애리조나) 하원의원의 생사는 미국민들의 초미의 관심으로 떠올랐고, 그녀의 회복을 기원하는 촛불이 미 전역에서 타올랐다.

기퍼즈 의원이 입원한 투산의 애리조나 대학 유니버시티 메디컬 센터(UMC)에는 시민들의 응원과 기도 행렬이 줄지어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이 병원의 한국계 외상외과전문의 피터 리(50)가 뉴스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기퍼즈 의원을 응급수술하고 진료를 담당한 피터 리는 매일 아침 수십대의 TV 카메라앞에 서서 기퍼즈 의원의 용태를 브리핑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미국민들은 안도하고 걱정했다.

당시 총격으로 머리에 중상을 입은 기퍼즈 의원이 응급실로 실려왔을 때 그 병원에 피터 리가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고 보도한 미국 언론도 있었다. 피터 리가 전쟁터에서 숱한 외상을 진료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 외과 전문의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토요일이었던 총격 사건 당일 아침 조깅을 하고 있던중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곧바로 달려왔었다고 했다.

피터 리는 "그 때 CNN 등 일부 언론은 기퍼즈 의원이 워낙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사망했다고 오보를 내고 사과 성명을 내기도 했다"며 당시 긴박한 상황을 상기했다.

결국 기퍼즈 위원은 그의 손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담당치료사였던 피터 리는 지난 2001년 아프간전 개전후 최초의 전진 작전 기지인 리노 캠프의 첫 종군 외과의로 파견됐고, 2005년에는 첫 이라크전 군의관으로도 투입됐다. 그 공로로 '국방무공훈장' '해군훈장' 등을 받기도 했다.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난 피터 리는 역시 의사였던 부친이 평화봉사단 활동을 위해 아프리카 우간다로 가면서 5세때 한국을 떠났다. 어린 시절을 우간다에서 보내다가 10세때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인근에서 자랐다.

미국 유명의대중 하나인 메릴랜드의 군의관 양성 의대(USUHS)에서 전문의 자격을 딴 뒤 군의관으로 활약했고 남캘리포니아대학(USC)에서 군의관 양성 프로그램을 지도하다 2007년 군에서 전역해 애리조나대 전문의겸 교수로 자리를 옮겨 일하고 있다.

피터 리는 "최근 15년동안 한국에는 세 차례 가봤다"며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들은 한번 서울에 가봤는데 신기하게도 맵고 짠 한국음식을 매우 좋아하고 미국에서도 한식당에 가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한편 피터 리는 한미문제연구소(ICAS)가 수여하는 '올해의 자유 상(Liberty Award)' 수상자로 선정됐다. 크리스토퍼 힐,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대사, 해럴드 고(고홍주) 국무부 법률고문 등 한미관계에 기여한 인물이나 미국내에서 활약한 한국계들이 역대 수상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