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안진석 기자]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농어업, 중소기업, 소상공인을 위한 재정지원을 종전보다 2조원 늘리기로 했다.
한·미 FTA의 국회 비준 후 여야가 합의한 피해보전방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아울러 피해보전직불제 발동 요건을 완화하고, 밭농업·수산 직불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생산자 단체가 운영하는 일부 농어업용 시설에 농사용 전기료를 적용하며, 농어업 면세유 공급대상을 확대하고 적용기간을 10년 연장했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한·미 FTA 비준에 따른 추가 보완대책'을 2일 밝혔다. 이번 추가 보완대책에는 피해 산업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보전 외에 축산소득 비과세와 면세유 공급대상 확대 등 농어업과 중소 상공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세제지원 등이 새로 포함됐다.
이번 대책은 지난해 10월 말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농어업 피해보전대책 13개안과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대책 4개 안을 모두 받아들이는 형태로 수립됐으며, 규제규범과 재정여건 등을 고려해 세부내용이 일부 조정된 것도 있다.
정부가 정치권의 요구 사항을 대폭 받아들임에 따라 재정지원 규모는 지난해 8월 추가대책 발표 때보다 2조원 늘어난 24조1천억원이 됐다.
세제지원 규모도 당시보다 8천억원가량 늘어난 29조8천억원이 됐으며, 농사용 전기료 확대에 따른 지원까지 포함하면 2017년까지의 재정과 세제 등 지원 규모는 무려 54조원에 달한다.
피해보전직불제 발동요건도 완화해 수입 증가로 인해 품목의 가격이 평균 가격 대비 85% 미만인 기존 요건을 평균 가격 대비 90% 미만으로 바꾸었다. 기준가격과 차액의 90%를 보전해주되 지급한도를 법인 5천만원, 개인 3천500만원으로 명시했다.
밀, 콩, 보리, 옥수수, 호밀, 조 등 19개 품목을 대상으로 재배면적 ㏊당 연간 40만원을 지급하는 밭농업 직불제를 도입했다.
육지에서 8㎞ 이상 떨어진 어촌마을에 가구당 49만원을 주는 수산 직불제도 시행하기로 했다. 우선 육지에서 50㎞ 떨어진 4천415어가를 대상으로 올해부터 시범적으로 벌인다.
농어가의 생산비를 절감하는 대책도 마련했다.
산지유통센터 선별·포장·가공시설, 수산물 저온저장시설, 굴껍질처리장, 수산물산지거점유통센터, 가축분뇨처리시설 등 생산자 단체가 직접 운영하는 농어업용 시설에 산업용보다 저렴한 농사용 전기료를 적용하기로 했다.
농업용 면세유 공급 대상에 농업용 스키드로더와 농업용 1t 트럭을 포함하고, 면세유 적용기간을 10년 연장하기로 했다. 일몰제도의 취지를 고려해 3년 내외의 단위로 연장키로 했다.
할당 관세를 적용하는 수입사료에 11개 품목을 새롭게 추가했고, 이중 귀리, 매니옥칩, 당밀 등 8개 품목은 무관세로 들어오도록 했다.
농어민의 비과세 부업 소득의 대상에 연근해·내수면 어업소득까지 확대하고, 가축별 공제 두수를 소·젖소는 현행 30에서 50마리로, 돼지는 500에서 700마리로 늘렸다. 비과세 소득금액은 현행 1천800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증액했다.
축산소득 비과세와 수입사료 무관세 확대, 면세유 공급대상 확대 등의 세제지원은 농어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안정적인 축산업 지원을 위해 축산발전기금 재원을 향후 10년간 2조원을 추가로 확충하기로 했으며, FTA에 따른 수입증가로 6개월 동안 매출액이나 생산량이 일정수준 이상 감소하는 등 FTA로 피해를 본 기업에 융자와 상담 등을 지원하는 무역조정지원제도의 피해 기준이 현행 매출액(생산량)의 전년 동기 대비 20%에서 5~10%로 완화했다.
FTA에 따른 무역피해로 폐업한 1인 사업주에게 6개월간 생계유지수당 월 최대 20만원과 훈련비·훈련수당 등을 지급하는 취업성공패키지를 제공한다. 폐업한 1인 사업주를 고용한 사업주에게는 고용촉진지원금을 종전보다 210만원 많은 최대 860만원 지원한다.
정부는 아울러 FTA 등으로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중소기업 창업 및 진흥기금' 내에 연 3천200억원 규모의 소상공인진흥계정을 신설해 내년부터 소상공인 금융지원과 과밀업종의 구조개선, 전통시장·상점가 지원하고, 직전연도 관세징수액의 3%를 출연하기로 했다.
당초 여야는 직전 회계연도 수출액의 1천분의 1 이상을 정부가 소상공인 지원기금에 출연하도록 합의했지만, 법제화 과정에서 재정여건을 고려해 직전 회계연도 관세 징수액의 3%를 기준으로 정부가 출연토록 조정했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과 품목을 공표하는 내용을 법제화하고, 골목상권의 활성화와 유통업계 종사자의 휴식권 확보를 위해 시ㆍ군ㆍ구 조례로 대형할인점과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영업시간을 최대 오전 0~8시까지로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한 달에 1~2일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농수산물 판매 비중이 51% 이상인 대규모 점포는 지자체 조례로 적용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
FTA 체결 대상 국가별로 다른 무역정보를 통합 제공해 상대국 무역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통합무역정보서비스 대상 국가를 미국 등으로 확대한다.
관련 예산을 7억원에서 12억원으로 증액해 대상국가를 올해 미국, 인도, 아세안 등으로 늘리고 내년 중국, 2014년 일본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원내대표 합의사항 중 일부는 지켜지지 않아 과제로 남았다.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 무역질서와 자율적 시장경제 원칙 등을 고려해 특별법 제정을 통해 대기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진출 차단을 강제하지 않는 대신 대기업이 민간 자율 합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때 동반성장위원회가 중기청장에게 사업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쌀은 FTA 피해부문이 아닌 점을 고려해 미곡종합처리장 도정시설을 농사용 전기료 적용대상에서 제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