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양진석 기자] 금융범죄로 의심되더라도 당국에 의해 위법성이 입증되는 비율은 극히 낮아 증시범죄 의심사건은 검찰에 의해 5% 가량만 기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금융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은 것이 주가조작, 내부거래 등 각종 불공정행위가 기승을 부리는 주요인이라는 분석이다.
금융당국이 최근 '정치 테마주' 작전세력에 대해 엄벌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런 현실에서는 국민들만 피해를 보는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투자자들에게 주는 피해에 비해 처벌 수위가 너무 낮은 금융범죄의 처벌 수위를 더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9일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출신인 김동원 연세대 객원교수가 거래소·금융위·검찰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0년 한국거래소가 불공정거래 혐의로 지목한 사건 338건이었다.
이들 사건을 금감원이 재조사한 뒤 데 금융위원회가 검찰에 고발한 것은 138건이며, 이 중 기소된 것은 18건에 불과했다. 이는 거래소가 적발한 불공정거래 혐의 사건의 5.3%밖에 안되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회사의 경영진과 대주주가 연관된 금융 범죄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금감원이 조사한 불공정거래 전체 209건 가운데 34건은 회사의 경영진과 대주주가 개입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008년에는 7건이 적발됐지만 2010년 21건, 작년에는 34건을 기록하며 3년 만에 5배 가까이 급증했다.
특히 경영진과 대주주가 회사의 신규사업 등에 대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공시 서류를 가짜로 꾸미는 불공정 행위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김 교수는 거래소가 발견하지 못한 주가조작 행위는 부지기수여서 수면 위에 드러난 증시 범죄는 빙산의 일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금융 범죄 수법의 전문성으로 인해 증거를 포착하기 어렵고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김 교수는 “부정거래 혐의자들은 첨단기법을 동원하는 데 반해 당국의 조사 능력은 이에 못 미쳐 금융 범죄를 많이 못 잡는다”면서 “당국에 적발되는 것은 전체 금융 범죄의 10%도 안되며, 또 한국거래소가 불공정거래로 적발한 사건 중에서 사법처리되는 비율도 10% 미만”이라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도 “금감원은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거래내역을 확인하는 정도밖에 못한다”며 “첨단기술을 동원하는 투기꾼들을 따라잡기 어렵다"고 김 교수의 지적을 시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금융범죄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미국·영국 등 금융 선진국과 같이 금융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세계 금융산업을 선도하는 미국과 영국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금융 범죄가 금융 시스템의 근간을 훼손해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 따라 금융 범죄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피라미드식 금융사기를 저지른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거래소 회장의 경우 2009년 징역 150년형을 선고받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9월 행정명령을 통해 금융 범죄 제재 강화를 위한 통합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한 것도 대표적인 예다.
법무부와 재무부, 증권거래위원회(SEC) 등이 참여하는 이 기구는 연방과 지방 당국의 공조로 중대 금융 범죄에 대한 조사와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미국 당국은 대형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의 지방채 파생상품 거래에서 위법 사실을 적발했으며 이로 인해 JP모건체이스는 작년 7월 2억2천800만달러(약 2천650억원)에 달하는 합의금을 물어야 했다.
영국도 금융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영국 금융감독청(FSA)은 지난해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대형 투자은행들에 대해 1억6천만파운드(약 2천900억원)에 달하는 배상 명령을 내렸다. 이는 전년의 6천300만파운드보다 2배 가까이 많은 금액이다.
김 교수는 "범죄의 대가가 범죄로 인한 기대이익보다 현저하게 크다면 범죄의 유인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며 금융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를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