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양진석 기자] 대기업들이 특정 회계법인과 5년 이상 장기 계약을 맺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10년 이상 특정 회계법인과 거래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기업과 회계법인의 감사인과 피감사인 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될 경우 유착 관계가 형성돼 부실 감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11 회계연도 기준으로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 중 44개 기업이 동일 회계법인과 5년 이상 계약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시가총액 최상위종목인 삼성전자와 현대차, LG화학, 신한금융지주, 삼성생명 등 11개 기업은 지난 2002 회계연도 이후 무려 10년 동안 회계법인을 교체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KT&G는 9년, SK텔레콤과 우리금융지주, 대한생명은 8년 동안 동일 회계법인과 거래를 했다.
호남석유화학과 하나금융지주, 현대글로비스, KCC, 영풍 등 5개 기업은 7년 연속, 기아차와 롯데쇼핑, 아모레퍼시픽, OCI 등 7개 기업은 6년 연속, 한국전력과 SK이노베이션, 외환은행 등 17개 기업은 5년 연속으로 특정 회계법인과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감사인인 회계법인이 장기간 바뀌지 않을 경우 기업과 회계법인 사이에 유착 관계가 형성돼 올바른 감사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좋은기업지배연구소 채이배 연구원은 "상장사의 경우 감사인의 독립성이 중요하다"며 "한 회계법인이 특정 기업의 감사인을 장기간 맡으면 서로 유착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회계당국은 기업과 회계법인 간 유착 관계를 막고자 지난 2006년 6년 이상 특정 회계법인과 장기 감사 계약을 맺으면 그다음 해에는 의무적으로 감사인을 변경하도록 법제화한 '장기감사인 교체 제도'를 도입했지만 2010년 폐지됐다.
하지만 최근 유럽 등 선진국에서 도입 논의가 진행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이 제도를 부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회계법인들은 감사의 비효율성 등을 이유로 감사인 교체 제도 도입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감사인이 자주 바뀔 경우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분식이나 오류를 발견하지 못할 확률이 훨씬 높아져 오히려 감사의 투명성을 낮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감사인 교체 제도가 폐지된 이후 '빅4 회계법인'인 삼일과 삼정, 안진, 한영회계법인의 시장 잠식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현재 100대 기업의 감사인은 모두 이들 빅4 회계법인이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0개 기업 가운데 삼일 회계법인이 36개 기업을 맡고 있고, 안진(27개)과 삼정(26개), 한영(11개)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 2002 회계연도에는 빅4 회계법인의 비중이 81%였다.
삼일회계법인 관계자는 "국외 진출 사례가 많은 대기업들은 국외에서도 국내와 동일한 수준의 회계 서비스를 원한다"며 "빅4 회계법인 모두 국외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어 대기업들의 수요가 자연적으로 많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