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김시내 기자] 대부분 초·중·고교가 추진한 시설 공사를 포함한 각종 사업에 예산 부풀리기, 불법 수의계약, 리베이트 수수 등 불법이 횡행, 정부가 교육 인프라시설 구축 분야에 매년 투입하는 6조원의 혈세가 일부 교육 관계자와 건설업자의 주머니로 줄줄 샌 것으로 드러났다.
주먹구구식으로 정책을 추진해 예산을 낭비하거나 특정 업체에 학교 공사를 몰아주고 뒷돈을 챙기는가 하면, 호화 교장실을 꾸미려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데 혈세를 쓰는 등 초·중·고에서 자행될 수 있는 모든 유형의 건설 비리가 등장했다.
감사원은 업체와 유착혐의가 있거나 금품·향응수수, 횡령 등을 저지른 146명에 대해 파면·정직이나 수사를 요청했으며, 이에 연루된 2천493개사에 대해서는 입찰참가제한, 등록말소 등의 조치를 했다.
이 같이 초·중·고교에서 드러난 각종 건설 비리와 예산 낭비는 과도한 교장의 권한과 솜방망이 처벌이 빚어낸 결과라는 지적이다.
또 학교라는 공간의 폐쇄성과 학원법인을 사유재산으로 인식하고 전횡을 저지르는 일부 운영자의 도덕 불감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무리한 정책 추진도 이 같은 비리가 발생하는 데 한 몫을 했다.
감사원은 17일 이명박 정부 들어 `교육·토착·권력'의 3대 비리를 근절하겠다는 방침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 서울특별시교육청을 포함한 8개 교육청을 대상으로 2008년∼2012년까지 각종 시설사업의 정책수립부터 예산편성, 계약, 시공 등 사업 전반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결과를 공개하면서 결과를 공개하면서 "학교장을 비롯한 계약 담당자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면서 "예산낭비와 같은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높으므로 공사발주 범위를 축소하거나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 14일에는 지방자치단체의 무더기 건설 비리 실태를 공개해 충격을 준 바 있다.
이런 가운데 교육 관련 감사 결과 발표에서도 지자체 감사에서 나타난 실태와 마찬가지로 무더기 비리가 적발됐다.
우선 교과부가 1조2천억원을 투입해 전국 4천800개교에 교과교실제를 추진하면서 남는 교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아 불필요한 증축과 중복 지원이 발생, 2009∼2010년 848억원을 낭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의 영향으로 학생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2009년에만 3천340개의 교실이 남아도는 상황인 데도 학교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평균 15억원씩 4천232억원을 지급했다.
무리한 정책 추진이 이 같은 예산 낭비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교과교실제의 경우, 교실재배치 계획 및 운영계획을 먼저 수립한 후 적정 준비기간을 거쳐 추진해야하지만 교과부가 2014년을 목표로 학교 현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시설비 위주로 지원했다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교과교실제는 기존 교실을 수준별 이동수업이 편하게 고쳐 교육과정 운영을 다양화, 전문화하는 제도다.
또 학교용지 매입 과정에서 교과부가 평가기준 수립을 비롯한 관련 법령 개정을 소홀히 해 7개교에서 200억원의 손실을 봤고, 매입 용지를 부당하게 감정해 보상비 228억원을 과다하게 지급한 사실이 적발됐다.
A 학원을 포함한 16개 학교법인은 학교법인이 자체 부담해야 할 체육관 신·증축 공사비를 학교회계에서 처리하는 수법으로 43억여원의 부당 이익을 챙기기도 했다.
또 불필요한 학교 시설 개보수에 572억원을 투입하고, 교장실 치장을 위해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했다가 적발된 사례도 경기교육청 관내에만 무려 15.6%(336개교)에 달했다.
특정 건설업자에 건설을 맡기고 뒷돈을 챙긴 사례도 나왔다.
서울교육청을 비롯한 8개 시·도 교육청의 26%(2천384개교)에서 건설업 미등록 업체와 3천876건, 액수로는 619억원에 달하는 부당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부당 수의계약에 따른 공사비의 10% 정도는 리베이트에 사용됐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추측이다.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 경기도 8개 고교를 점검한 결과 증축이 필요 없는데도 무리하게 공사를 벌여 학급당 평균 학생이 15∼16명으로 전체 평균 37명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고, 앞으로도 학생 숫자 감소로 남는 교실이 생길 우려가 커졌다.
이어 서울 A고교는 교과교실제 사업비 2천300여만원을 교원 휴게실 리모델링, 안마의자, 침대, 발마사지기 구입에 이용하고, 서울 B 중학교는 교장실, 이사장실, 법인사무실 등을 꾸미는 비용으로 사용했다.
이와 함께 교과부와 경기교육청이 영어교실을 구축하면서 원칙도 없이 시설 확장 위주로 무분별하게 지원해 244개 학교에서 86억원의 예산이 더 많이 들어갔다.
이어 경기도의 C중학교는 학교 신설 과정에서 용도 변경이 필요 없는데도 용인시에 용도 변경을 요청함으로써 특정 도시개발조합에 83억원의 보상금을 과다지급했다.
경기 D초교는 교장실을 기준면적의 2배인 64㎡(19.4평)로 만들면서 소파 등 비품에 2천800여만원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천 E고교는 학교운영위원 소유의 무자격 건설업체에 수의 계약을 맡기고, 행정실장은 이 업체로부터 1천400여만원의 금품ㆍ향응을 받았다 들통났다.
전북 F학원의 한 중학교 행정실 직원은 학교 이전 과정에서 고교후배가 운영하는 건설사에 공사를 맡기고 상품권, 골프 등 금품ㆍ향응을 받았다.
서울 G초교는 공사 발주 대가로 학교 발전기금 5천500만원을 받았으며, 그 결과 는 부실시공으로 나타났다.
단일 공사를 여러 건으로 쪼개 몇 개의 수의계약을 체결해 대가를 받는 지능적 방법도 동원했다.
경기 H초교는 6천만원 짜리 운동장 배수로 공사를 하면서 운동장 정비, 운동장 배수개선, 스탠드 도장 및 보도블록 공사 등 3건으로 나눠 3개 업체와 수의계약을 체결하고 리베이트를 챙겼다.
이 같은 불법·편법 배경으로 자율성을 부여받은 각 시·도교육청이 학교장의 공사 발주 권한을 대폭 확대한 반면, 부정 연루자 처벌은 온정적 조치로 일관해 부조리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선 학교에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명분으로 학교 발주 공사의 규모를 3천만원에서 2억원으로 늘리는 등 재량권을 확대한 게 빌미를 제공했다.
경기교육청은 2008년 이후 모두 7만4천628건 계약 중 77.1%(5만7천558건)를 학교장이 발주했고, 대부분(96.3%, 5만5천415건)을 수의계약 방식으로 체결했다.
감사원이 표본 조사한 50개교의 848건 모두 설계서조차 작성하지 않고 업체가 제출한 견적 가격대로 계약을 체결했고, 82.2%(697건)는 도면조차 첨부하지 않아 사후에 공사 내용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
이 결과 공사를 친인척, 학교운영위원 등이 관계된 회사에 공사를 맡기는 사례가 빈발하는 등 예산을 `눈먼 돈' 취급했다.
또 이 과정에서 불법 사실이 드러나 적발돼도 관련자 처벌은 주의나 경고에 그치는 등 온정적인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4개 교육청은 위법하게 계약을 체결한 152개교에 1천70억원을 계속 지원하는 등 사실상 방치했으며, 경기교육청은 2010년 2월 적절치 않은 업무 처리에 대해 `징계'를 하도록 했으나 적발한 971건 중 징계는 5건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학교장의 공사 발주 범위를 줄이고, 수의계약 관행 개선과 같은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감사원은 교육부 장관에게 시·도교육청 등에 대한 지도·감독 업무 등을 철저히 하도록 주의를 촉구했다.
교육 당국의 무관심과 일부 몰염치한 교육 관계자가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미래 세대 주역인 청소년이 학업과 인성을 배워나가는 학교를 오염시킴에 따라 교육계에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