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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 증여 기승' 미성년자 보유주식 4조원 육박… 1년새 4배 급증

[재경일보 양진석 기자] 미성년자가 보유한 주식이 1년 새 4배나 급증해 지난해 말 현재 4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 등으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증여받는 미성년자가 약 6000명에 달했으며, 이 중에는 10세 미만 어린이가 50억원이 넘는 재산을 증여받는 경우도 있다.

이는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미성년자에 대한 주식 증여가 편법으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적부터 주식을 조금씩 증여하면 증여세를 피할 수 있다.

또 종합부동산세 대상 미성년자는 170여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재산 상속·증여 등에 있어서 편법까지 동원 되고 있어 부유층의 부의 대물림이 양극화를 초래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갈등의 소지까지 안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12일 한국거래소와 국세청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주식을 보유한 19세 미만 미성년자는 주식시장 전체 주주의 1.8%에 해당하는 9만2000명이었다.

이들이 보유한 주식은 당시 시가총액 기준으로 시총의 1.4%인 3조9510억원으로 나타나, 1인당 평균 4295만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미성년자 주주들의 보유액은 2004년 3700억원에서 2009년 7500억원, 2010년 1조1290억원으로 급증했으며, 특히 지난해는 일시에 4배 가까이 늘어나며 약 4조원대로 껑충 뛰었다.

특히 미성년자 주주들의 보유액은 20~24세(1조1820억원)와 25~29세(3조4980억원) 연령층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현행법상 만 20세 미만의 청소년은 부모의 동행과 동의 없이 혼자서 자신의 주식 계좌를 개설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자 주주가 이처럼 많은 것은 부를 대물림하면서 증여세를 피하기 위한 편법으로 주식 증여가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증여세는 기간과 액수에 따라 누진적으로 부과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조금씩 물려주면 증여세를 피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주식을 통한 증여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 이 같은 미성년자 수가 수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재벌닷컴 정선섭 대표는 "주식은 소규모로 여러 차례에 걸쳐 증여하기가 쉬워 상속·증여의 수단으로 많이 이용된다"며 "증여세가 기간과 액수에 따라 누진적으로 부과되기 때문에 이를 피해 어릴 때부터 조금씩 물려주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2010년 기준으로 주식을 증여 받은 19세 이하 미성년자는 5989명이었고 이중 10세 미만도 2213명이나 됐다.

또 이들이 신고한 증여 신고가액은 7120억원으로, 1인당 신고가액이 약 1억2000만원에 달했다.

신고대상 미성년자 중에는 신고가액이 50억원이 넘는 경우도 6명이나 됐으며, 이중 2명은 나이가 10살도 되지 않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 이기웅 간사는 "부유층이 `세(稅)테크'를 명분으로 부를 자녀에게 어릴 때부터 물려주는 경우가 많다"며 "편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방식은 일반 직장인에게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부모 등에게서 50억원 넘게 증여받은 대상자는 2006년 3명, 2007년 7명, 2008년 20명, 2009년 2명에 이어 작년 6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에 주식 증여가 가장 많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 뿐만 아니라 부동산의 미성년자 증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어린 나이에 부모로부터 막대한 부동산을 물려받아 종합부동산세 대상자가 된 미성년자도 수 백명을 넘었다. 종합부동산세는 부동산 부자를 상징하는 것이다.

2010년 기준으로 20세 미만 종부세 대상자는 171명에 달했고 세액은 41800만원이었다. 미성년자 종부세 대상 가운데 주택분 과세 대상자는 59명, 종합합산토지분은 115명, 별도합산토지분은 4명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종부세 부과기준이 완화된 탓에 2008년 434명, 2009년 216명으로 줄어든 것이다.

현재 종부세 대상 기준은 주택 6억원 초과(1세대 1주택자는 9억원 초과), 종합합산토지 5억원 초과, 별도합산토지 80억원 초과 등이다.

또 사회 초년병이거나 대학생 나이인 20∼29세에서는 1149명이 종합부동산세 대상자였다.

하지만 편법, 탈법적인 수단이 동원된 부유층의 증여·상속을 통한 부의 대물림은 사회적 반감을 불러올 수 있다.

경제활동도 하지 않는 어린이가 수십억대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열심히 땀흘려 일하면서도 가난의 굴레 속에 허덕이는 이들에게는 분노를 일으킬 수도 있다.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전성인 교수는 "아버지가 부자면 아들도 부자로 운명이 결정되는 사회는 절망감을 키우고 인적 자본이나 창의력의 발휘를 저해한다"며 "이는 결국 사회의 역동성을 떨어뜨리고 갈등까지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증여세 등에 대한 과세 강화와 당국의 철저한 감시, 감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실련의 이기웅 간사는 "주식 증여는 주가 상승분에 대한 과세가 불분명해 제대로 된 감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주식과 자산 증여에 대한 과세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성인 교수는 "조세법률주의에 가까운 현재 분위기에서는 납세자가 세금 납부를 피하기가 비교적 쉽다"며 "부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서는 조세 포괄주의를 확대 실시하고 증여의 범위를 넓게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