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시장의 예상과 달리 9월 기준금리가 연 3.0%로 동결됐다.
최근 두 달 전 금리 인하의 효과를 더 지켜볼 필요가 있는 데다 정부가 재정정책을 통해 두 차례 경기부양책을 내놓은 데 이어 미국과 유럽 등도 추가부양에 나설 것으로 보여 이 같은 경기부양책의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뜻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내수와 수출 부진으로 인해 올해 경제성장률이 '상저하저'를 넘어 '상저하추'로까지 악화돼 2%대 성장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은이 2%대 성장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13일 김중수 총재 주재로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관에서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0%로 유지했다.
기준금리는 지난해 5월 3.0%에서 6월 3.25%로 오른 뒤 13개월 만인 올해 7월 전격적으로 0.25%포인트 인하됐지만 이후 두 달째 동결이다.
기준금리 동결의 표면적인 이유는 두 달 전 금리 인하의 효과를 더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한은은 지난 7월 기준금리를 연 3.25%에서 3.0%로 0.25%포인트 내렸는데, 기준금리 변동의 효과가 실제로 나타나려면 적어도 석 달은 기다려야 한다.
특히 기재부가 내놓은 5조9000억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은 한은의 시간을 벌어줬다.
현대경제연구원 임희정 연구위원은 "기재부의 거시정책으로 한은은 한두 달 더 지켜보며 금리 여력을 비축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소비심리는 미약하나마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7월 중 전월 대비 소매판매 증가율(3.4%)이 2009년 5월(4.1%) 이후 가장 높았다. 7월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도 전월 대비 2.5%, 6.8%씩 증가했다.
유럽과 미국의 향후 경제정책 대응 방향을 지켜보자는 판단도 주된 동결요인으로 작용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위기국 채권 무제한 매입 프로그램'(신 재정협약)의 효과와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미국 금통위)의 추가 양적완화 여부를 살펴본 뒤 우리 기준금리에 변화를 줘도 늦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유럽의 신 재정협약이 본격 가동되고 미국이 추가 양적완화에 나서면 우리로서는 `손대지 않고 코를 푸는' 효과를 얻게 돼 추가 금리인하 부담이 줄어든다.
금리인하 효과가 성장에 미치는 효과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달에 금리를 내리면 향후 정책대응 여력이 그만큼 축소된다는 점도 고려됐다. 세계경제의 침체가 장기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인하 카드'를 남겨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신 재정협약하에서의 채권 무제한 매입 프로그램과 상설 구제기금인 유로안정화기구(ESM) 설립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긴급신청을 기각했다. 신 재정협약이 좌초될 위기에서 일단 벗어났으며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 무제한 매입 계획에도 힘을 실어줬다.
미국 금통위에서 3차 양적완화(QE3) 등 경기부양책이 나올 가능성도 다소 높아졌다. 미국의 8월 실업률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새 일자리가 시장의 전망치를 크게 미치지 못하는 9만6000개 늘어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금통위는 또 기획재정부가 최근 두 차례 경기부양책을 내놓은 데 이어 미국·유럽 등도 곧 추가 부양에 나설 태세인 가운데 7월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한 박자 쉬며 금리 여력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무상보육 등 정책효과가 내년 초 사라지는데다 잇단 태풍에 따른 신선식품·채소류 수급불안, 국제농산물 가격 급등, 국제유가 상승, 공공요금 인상 가능성 등 물가불안 요인이 엄존하는 것도 금리인하를 주저하게 한 요인이 됐다.
가계 이자 경감을 이유로 금리 인하 목소리가 높았지만 최근 가계부채 증가세는 크게 둔화된 데다 금융권에서도 '세일앤드리스백' 등 가계부채 대책을 내놔 현재로서는 금리 인하의 주요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
SK증권 염상훈 연구원은 "미국 등 주요국에 앞서 우리만 먼저 금리를 내리는 것은 성급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경제연구부문장도 "유럽의 신 재정협약 등 경기부양책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아 한은으로선 일단 지켜보자는 차원에서 동결한 것 같다"고 평했다.
그러나 이날 금리 동결은 경제 성장에는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7월 한은이 전망한 올해 경제성장률은 연 3.0%이지만 현재로서는 2% 성장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지만, 일부 투자은행에서는 1%대 성장까지 점치고 있는 상태다. 한국 경제가 '상저하저'가 아닌 '상저하추'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경제의 동력인 수출은 7~8월간 '쇼크' 상태다. 수출은 7월 전년 동기 대비 8.8%, 8월 6.2%씩 줄어들었다. 광공업 생산도 두 달째 마이너스(-)다.
내수는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다.
소비자 심리를 보여주는 소비자동향지수(CSI)는 8월 99로 오히려 기준선(100) 아래로 떨어졌다. 경제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소비자가 더 많아졌단 의미다. 기업·소비자 등 경제주체의 경제심리지수(ESI)가 4개월 연속 떨어졌다.
기재부가 경기부양책을 내놓기는 했지만 돌려줄 세금을 걷지 않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한은이 손을 놓을 상황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임희정 연구위원은 "한은이 기재부의 실물정책과 발을 맞췄다면 정부의 경기부양 의지를 일관적으로 보여주며 부양 효과가 가산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국채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더 낮은 '금리역전' 현상이 이어지는 점 역시 우려스럽다. 12일 현재 국고채 3년물 금리는 2.8%로 기준금리보다 0.2%포인트나 낮다.
이에 따라 이번 인하 결정은 자칫 `실기론'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한은의 이날 금리동결 결정이 실기론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민영 부문장은 "경기가 더 악화하면 한은이 금리 인하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명활 금융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도 "내달까지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한은이 통화정책을 수행하는데 '과도하게 신중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