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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불황 속 비우량기업 신용등급 강등·부도 속출… 신용등급 양극화

[재경일보 양진석 기자] 대내외 경제 둔화로 인해 비우량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하향조정되고 부도도 속출하고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량 기업의 등급 상향조정은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지만 상대적으로 부실한 기업들은 부도나 등급이 강등된 곳이 늘어났다.

이로 인해 회사채 시장에서 저신용등급 기업들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빚을 갚지 못해 바닥으로 추락하는 개인 저신용자들도 늘어나는 등 기업과 개인의 신용등급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7일 국내 신용평가사 3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BB+' 이하 투기등급 기업의 등급 하향조정이 10건, 부도가 6건으로 나타났다.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3사의 투기등급 분석 대상 82개사(중복 포함) 중 20%(5곳 중 1곳)에 해당하는 업체가 부도 처리되거나 신용등급이 강등된 것이다.

네이쳐글로벌, 동양텔레콤, 세계투어, 비앤비성원 등이 부도 처리됐고, 신성솔라에너지, 케이아이씨, 인스프리트, 지앤디윈텍, 유비프리시젼, 엔스퍼트 등의 투기등급 기업은 신용등급이 하락했다.

반면에 투기등급 기업의 신용등급이 상향조정된 것은 상반기 대봉엘에스 단 1건이었다.

상향 건수 합계 45건 중 `BBB-' 급 이상의 투자적격등급 기업이 98%에 해당하는 44건으로 집계됐다.

대기업보다 수익성과 재무건전성이 열악한 중소기업의 등급 강등이 유럽 재정위기와 경기 침체 속에서 계속돼 상하위 등급간 격차가 심해졌다.

결국 신용도가 우수한 기업은 신용등급이 상승한 반면 신용도가 낮은 기업의 등급은 하락해 점점 격차가 벌어지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등급 상승은 대기업군에 한정돼 있고 중소기업군은 하락 경향이 강했다"라며 "투자와 투기등급 기업의 등급 변동 방향성이 반대인 것은 실적 양극화와 함께 경기 회복 지연으로 인한 부실기업들의 유동성 위험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나이스신용평가 이강욱 연구원은 "올해 상반기 중 기업 신용등급의 상승 강도가 크게 낮아졌다"며 "2000년대 들어 지속된 국내 기업간 실적 양극화와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인해 투기등급의 유동성 위험 증가가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채권부도율도 투자등급과 투기등급간 격차가 여전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투자등급 기업의 연간 부도율은 0.45%에 불과했지만 투기등급은 5.62%에 달했다.

최상위 등급의 부도율은 0%였지만 최하위 B등급 이하는 8.16%로 차이가 컸다.

2008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금시장이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3년 연속 10%대를 기록했던 투기등급 부도율이 2007년 이전 평균 수준으로 감소했지만 투자등급과의 격차는 여전히 컸다.

회사채 시장에서도 우량기업과 비우량 기업들의 발행 금액이 현저한 차이를 나타내 양극화가 극심하게 나타났다.

코스콤에 따르면, `AA∼AA+' 회사들의 올 상반기 회사채 발행액은 10조389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6조7097억원)보다 49.62% 증가했다.

반면 `A∼AA-' 등급 회사채도 같은 기간 7조6465억원에서 5조6440억원까지 2조원 넘게 크게 감소했고, `BBB+∼A-' 등급 회사들의 상반기 발행액은 3조335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4조1420억원)보다 19.48% 줄었다.

또 올 들어 지난 13일까지 `BBB-' 이상 등급의 회사채 발행액은 48조6782억원에 달했지만, `BB+' 이하 등급 회사채 발행은 7402억원에 불과했다.

`A-' 이상 등급 기업이 46조원 이상을 회사채로 조달했지만, `CCC' 등급 이하 기업의 발행은 전무했다.

올 3분기(9월13일 기준)에도 `A-∼AAA' 등급의 회사채는 총 14조2820억원 발행됐지만 `BBB+'이하 등급은 8189억원에 불과했다.

금융투자협회 차상기 채권시장팀장은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나타나면서 투기등급 기업에 대한 위험부담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 이들 기업의 회사채 발행은 쉽지 않다"며 "이런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용등급 양극화는 개인에게도 나타났다.

나이스신용평가정보에 따르면, 6월말 기준 개인신용등급 1등급은 563만8835명으로 전체 평가자 중 13.50%를 차지, 지난해 12월 12.13%에 비해 1.4%포인트 늘어났다.

2등급은 13.68%로 작년 12월보다 0.9%포인트 올라갔다.

문제는 최상위 등급과 함께 최하위 9, 10등급 비중도 증가했다는 것.

최저등급인 10등급 비중은 같은 기간 0.93%에서 0.99%로 확대됐다. 9등급 역시 3.23%에서 3.24%로 비중이 커졌다.

불량률에서도 양극화가 확인된다. 불량률은 최근 1년간 채무 불이행으로 은행연합회에 통보되거나 3개월 넘게 원리금 상환을 연체한 대출자 비율이다.

작년 6월 기준으로 1등급의 불량률은 전년 6월과 같은 0.06%였지만 10등급의 불량률은 30.91%에서 33.52%로 증가했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은 "기업이나 개인이나 마찬가지로 자산이 없으면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워 양극화가 더 심해진다"라며 "부익부빈익빈이 심해지면 결국 전체 소비가 줄어들어 국가 경제에도 좋지 않다. 부유층의 사회적 헌신과 정책적 보호수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업과 개인의 신용등급 양극화는 경제 회복을 지연시킬 위험요인으로 지적된다.

양극화로 취약 계층의 부채 부담이 증가하고 이것이 금융부문 부실화로 이어지면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한양대학교 경제학부 하준경 교수는 "개인과 기업 신용등급 양극화는 결국 사회 양극화를 반영한 것"이라며 "수출 대기업과 내수 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심화되고 `낙수효과'가 사라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신용등급은 결국 기업의 이익에 달렸는데 이익률이 수출대기업에서는 올라가지만 내수 중소기업들은 떨어진다"며 "대기업 이익이 중소기업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공정거래를 강화하고 경제민주화와 동반성장을 위한 구조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물이 넘쳐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대기업 성장이 중소기업 성장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은 "저신용자나 취약기업은 어려운 환경에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서 "우량기업과 신용등급이 높은 개인은 오히려 부를 쌓는 기회로 삼아 양극화가 심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유층이 기부나 사회적 헌신을 통해 동반성장을 해야 한다"면서 "기회를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정책적 보호수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