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규현 기자] 올해 들어 주요 선진국과 신흥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30차례에 걸쳐 자국의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일본, 유로존 등 주요 선진국은 `제로' 금리에 가까운 초저금리 기조를 수년간 유지했으며,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7년간 초저금리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경기가 개선되지 않는 한 각국의 저금리 기조는 당분간 계속해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 각국이 이처럼 앞다퉈 기준금리를 낮추거나 저금리 기조를 이어가는 것은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부양에 나서기 위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정적자로 나라 `곳간'이 비어 유동성 공급을 통해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쓸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환율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에서 기준금리를 낮추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당장 수출에 유리하려면 자국 통화의 강세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8일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기준금리 변화를 집계한 28개 주요국 중 16개국이 올해 들어 30차례에 걸쳐 자국의 기준금리를 내렸다.
특히 기준금리 인하에 다소 여유가 있는 신흥국들이 잇따라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상반기 칠레·태국(이상 1월)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2월), 노르웨이(3월), 인도(4월), 폴란드(5월), 중국·호주(이상 6월) 등이 기준금리를 낮췄다.
이어 하반기에는 한국·중국·유로존·필리핀·남아프리카공화국(각 7월), 브라질(8월), 스웨덴·체코·헝가리(각 9월), 호주(10월)가 정책금리를 인하했다.
호주·스웨덴·필리핀은 올해 들어 3차례씩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고 중국·체코·헝가리도 각각 2차례 금리를 하향조정했다.
소위 `브릭스(BRICs)' 국가로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는 브라질은 올해 무려 6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하해 작년 연 11.0%에 달했던 기준금리가 올해 8월 7.50%까지 떨어졌다. 기준금리를 도입한 이래 최저치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6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5%에서 2.5%로 내린 데 이어 지난달 1.6%로 다시 더 낮춰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브릭스 국가인 전 세계 `성장엔진' 중국도 유럽발 재정위기 여파로 수출이 감소세가 두드러지자 6~7월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낮춰 6.00%까지 떨어진 상태다.
그러나 유럽발 재정위기로 수출에 경고등이 들어와 더 낮출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이엠투자증권 임노중 투자전략팀장은 "지금 상황에서는 중국이 조만간 어떤 조치를 취할 것 같다"며 "올해 기준금리를 두차례 내려 기준금리보다는 지급준비율 인하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는 올해 4월 7.00%로 떨어졌다.
러시아만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지난달 기준금리를 8.2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기준금리를 더 이상 낮출 여력이 없는 주요 선진국은 `제로' 금리에 가까운 초저금리 상태를 수년째 이어갔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12월 기준금리를 0~0.25%로 묶은 이후 46개월째 동결 중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달 기존 수준을 2015년 중반까지 유지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어 약 7년간 제로 금리 정책을 유지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게 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에 그치지 않고 3차 양적완화(QE3)에도 나섰다.
미국이 이처럼 `돈 풀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 상태지만 이보다는 경기부양이 우선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도 이번 달 기준금리를 0~0.1%로 유지했고 유럽중앙은행(ECB)은 0.75%로 동결했다. 이들 국가의 기준금리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제로'가 아니라 `마이너스' 상태다.
홍콩도 2008년 12월 이후 46개월째 기준금리를 최저 수준인 0.50%로 묶어 두고 있고 일본은 2010년 10월 이후 24개월째 기준금리를 0~0.10%로 동결했다. 이번 달에도 동결 조치가 나왔다.
각국이 이처럼 앞다퉈 기준금리를 낮추거나 제로금리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부양에 나서기 위해서다.
각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계속 하락 중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지난달 말 제시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2.6%까지 떨어졌다.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7%대로 떨어졌다.
이 때문에 한국도 7월 한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경기부양을 위해 연내 기준금리를 더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10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현행 3.00%인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NH농협증권 신동수 연구원은 "이번에 금리를 내리지 못하면 더 어려워질 수 있어 10월이 적기"라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 각국의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날 수 있어 이번 달 인하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각국의 기준금리 인하 기조는 세계 각국의 경기 회복과 안정을 꾀하기 위한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나라 곳간을 더 열어 경기를 부양할 여력이 없어서 돈을 더 푸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각국의 정책공조 조치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동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금리 인하를 통해 자국의 환율을 방어할 필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자국 통화의 강세를 막는 데 더욱 적극적이다.
일본이 지난달 자산매입 기금 규모를 70조엔에서 80조엔으로 10조엔 늘리며 양적 완화조치를 시행한 것도 다른 국가의 통화 완화로 엔화 강세가 심각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각국의 합의에 따른 의도적인 경기부양이 아니라 몇몇 국가의 유동성 공급에 대한 대응으로 자연스럽게 나온 조치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달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선진국들의 통화공급 확대 정책으로 환율에 불균형 요소가 생기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통화정책을 통한 유동성 공급 확대는 원자재 시장에 대규모 투기자본이 유입되는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로 인해 원자재, 원유 가격이 상승할 수 가능성이 크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한국 등 펀더멘털(기초여건)이 양호한 국가로 자금이 급속히 유입되고 있는데 향후 대내외 불안요인이 발생하면 자금이 급속도로 다시 빠져나갈 수 있는 것도 고려할 사항"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