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규현 기자] 세계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해 `닥터 둠'으로 불리는 미국 월가의 대표적인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11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 특별강연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 ▲미국 재정위기 ▲중국 경제 경착륙 ▲신흥국 경기둔화 ▲세계 지정학적 충돌이라는 요소가 결합하면 `퍼펙트 스톰(강력한 폭풍)'이 몰아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그리스가 내년에 유로존에서 탈퇴하고,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고조돼 유가가 폭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리스 내년 유로존 퇴출… 유로존은 붕괴할 수도
루비니 교수는 먼저 유로존이 재정위기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유로존이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채권을 사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터널 끝에 빛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ECB가 너무 엄격한 조건을 제시해 양국이 긴축재정에 들어가면서 부동산시장이 붕괴하고 경기침체가 악화하는 등 유로존 위기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루비니 교수는 "유로존이 정치적 의지를 반영해 동맹을 맺고 긴축재정을 좀 더 미룬다면 위기가 끝날 수도 있다"며 "통화동맹을 강화하면 이들 국가의 생존 확률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 방식을 선택하지 않으면 재정위기는 더 심해지고 그리스는 2013년에 유로존에서 퇴출당할 것"이라며 "그리스가 퇴출당하면 유로존은 생존하겠지만 이탈리아와 스페인까지 탈퇴한다면 유로존 자체가 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일들은 12개월 안에는 없겠지만 3~5년 안에 두 나라 정도가 유로존을 탈퇴하고 (유로존의) 30~40%는 붕괴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또 유로존의 핵심 국가는 구제금융 실시를 요구하는데 주변국은 긴축재정을 하면서 유로존 17개 정부가 서로 갈등을 빚고 있다고 진단했다.
◇ 미국 폭풍전야… 중국 경착륙 우려
미국에 대해서는 지난 2년간 나쁘지 않았던 경제상황이 `폭풍전야'를 맞았다고 우려했다.
루비니 교수는 대선에서 밋 롬니와 버락 오바마 중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국의 성장은 둔화할 것이라며 "유럽에는 이미 위기가 닥쳤지만 미국에는 미뤄뒀던 상황이 닥쳐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에서는 공공부채 증가와 투자 과잉이 경제 연착륙의 뇌관이라고 설명했다.
공공부채 규모가 GDP의 25%라고 하지만 지방정부 부채까지 합치면 80%까지 올라간다고 전했다.
과잉투자를 해오던 국영기업이 투자비 회수에 나서면서 부동산 가격 디플레이션과 신용경색이 일어나는 점도 취약점으로 꼽았다.
루비니 교수는 "원자바오 전 총리가 말했듯이 중국의 지나친 수출지향모델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5% 이하이면 경착륙이라고 보는데 정치적 리더십 변화에 따라 2014년이면 성장률이 5%로 둔화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신흥국은 선진국 경기와 디커플링이 어려워진 점, 국가주도형 자본주의가 무역보호주의를 부추기는 점을 위험 요소로 봤다.
◇지정학적 충돌 심화로 유가 배럴당 200달러 넘을 수도
루비니 교수는 또 이란의 핵 보유에 위협을 느낀 이스라엘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어 향후 유가가 급등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시리아 내전,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레바논에서 시아파와 수니파 충돌, 핵을 보유한 파키스탄 등도 세계 곳곳의 불안요소라고 평가했다.
한국과 일본, 일본과 중국, 중국과 대만의 영토 분쟁에 대해서는 "경제성장이 둔화하면서 국가별로 민족주의가 솟구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상황에서 유가가 20~30%만 올라도 전세계는 큰 타격을 입는다"며 "이스라엘과 이란 간 군사대결이 발생하면 유가는 배럴당 200달러가 6개월 이상 지속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 퍼펙트 스톰 가능성 낮지만…
다만 루비니 교수는 앞서 지적한 리스크가 동시다발로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봤다.
그는 "내년에 퍼펙트 스톰이 일어난다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라며 "다만, 5가지 리스크 중 하나라도 발생한다면 세계 경기를 흔들어 놓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4년 전 금융위기 당시에는 전 세계가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 여력이 충분했지만, 이제는 모든 정책수단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 세계가 내수 부진에 시달리면서 수출을 타개책으로 삼고자 너도나도 통화가치 절하를 유도하는 현실도 우려했다.
그는 "외계와 무역을 하는 것이 아닌 만큼 무역흑자국이 있으면 무역적자국도 있다. 모든 나라가 무역흑자를 위해 화폐 가치를 낮추려 들면 보호무역주의와 화폐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주요20개국(G20)이 국제공조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 만큼 글로벌 경제는 정치적 리더십에 달렸다는 지적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