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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의 웃기고 자빠졌네

[재경일보 민보경 기자] 웃기고 자빠졌네?
김미화는 말한다.

“어릴 적부터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고, 지금도 코미디언이고, 죽는 순간에도 코미디언이길 원한다. 나는 언젠가 다시 코미디로 돌아갈 것이고, 묘비에는 ‘김미화 웃기고 자빠졌네’라고 새길 것”이라고.
 
80년 대 초반, 일자눈썹 붙이고 방망이 들고 ‘음메 기살어!’를 외치던 순악질 여사 김미화. 국민 개그우먼이란 표현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녀의 입담과 재치는 전 국민을 웃게 만들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를 웃기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20여 년을 몸담고 있던 정통 코미디 분야에서 벗어나 MBC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을 맡으며 ‘시사하는 여자’로 변신한 지 근 10년. KBS 블랙리스트 사건을 시작으로 최근 4년간 겪어온 MBC 하차, 사찰 등 언론과의 갈등은 그녀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고, 그녀에겐 투사라는 이미지가 씌어졌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웃겨야 하는 개그우먼에게 시대는 눈물을 강요했고, 그녀는 미련하게도 참지 못하고, 못 본 척 못하고 박이 터져라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렇게 그녀는 희극인에서 비극인이 되었다.

이 책은 그간의 소송 과정을 중심으로 당시의 심경과 CBS <김미화의 여러분>을 통해 다시 시사프로 진행자로 복귀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녀에게 늘 힘이 되어 주는 남편과 사람들 이야기를 풀어낸 김미화의 고백이다. 사랑은 나누면 커진다는 말을 믿으며 현재 80여 개의 단체에서 우리 사회의 ‘덜 혜택 받은’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한 그녀는 ‘나눔’과 ‘진정성’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다. 나눔의 집 할머니들 앞에선 한없이 미안스럽고, 물대포를 맞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분노하고, 선거일엔 일자눈썹 붙이고 방망이 들고 투표를 독려하고, 울고 있는 구럼비를 살려 달라 호소하고. 시사하는 여자로 산 10년의 세월은 보통시민 김미화를 자연스레 개념시민 김미화로 만들었다.
 
그녀의 글에는 솔직함이 배어 있다. 명진 스님 말씀대로 웃고 있는데도 가슴 한 켠이 찡해지고, 찡하게 울려 놓고선 어느새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힘들어도 힘든 척하지 못하고, 아파도 아픈 척하지 못한 그녀의 고백에 눈물이 흐를라 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특유의 유머로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며 우린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기대하시라, 순악질 프로젝트
한 개인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지탱하게 해 준 것은 평생의 벗 남편, 그리고 자연 덕분이었다. 7년 전 재혼과 함께 경기도 끝자락에 위치한 시골로 이사, 후조당(後凋堂)이라는 이름의 집을 짓고 불편하지만 더 없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부부의 소소한 일상은 자연 그 자체다. 기온이 떨어져 수도가 얼면 집 앞 냇가가 욕실이 되고, 여름이면 아직도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봄이면 논에서 개구리가 오케스트라를 합주하는 동네. 부부는 장날이면 장터에 나가 장구경하면서 국밥 한 그릇 시원하게 비우고, 바람 좋은 저녁이면 동네 입구 앞 수퍼에 앉아 동네 형님들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주말이면 개들을 데리고 산책을 하며 자연이 주는 넉넉함과 거짓 없음을 배우고 있다. 

부부는 이제 또 다른 꿈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다. ‘순악질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진행 중인 복합 문화 공간이 머지않아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고 놀러오는 사람들의 사랑방이 될 공간,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과 현재 삶의 속도를 줄이면서 문화도 나누고, 차도 마시고, 음식도 나누는 공간. 자연 한가운데서 샤샤샤 바람에 누웠다 일어나는 억새소리 들으며 휴식을 취하는 공간.
그녀, 아니 부부의 꿈이 완성되길 기대한다. 

♣ 본문 중에서

“음……, 아마 안 될걸! 웃기고 자빠졌네……. 어렵데이. 내가 볼 때 니는 이미 세상이 바라보는 프레임 안에 갇힌 기라. 절대로 그 묘비명대로 살 수 없다는 거지. 이런 비상식적인 말도 안 되는 세상 앞에 어떻게 바라는 대로만 살 수 있겠노 말이다. 그렇게 살기엔 이미 어렵다고 본데이.” 나도 지지 않고, “누가 맞는지는 세월 좀 지나고 나서 얘기하자. 난 무대에서 웃기다 쓰러져 죽을 거다. 웃기고 자빠질 거라구!” 나도 내 앞날이 궁금하다. 과연 누구 말이 맞을지…….
- 프롤로그 중에서

나는 그들을 법의 심판대로 끌어들였고 싸움은 시작됐다. ㄸ신문과의 공방에서 포인트는 단연 ‘김미화가 친노냐 아니냐,’ 나아가 ‘김미화가 노무현과 손잡고 정치에 참여했느냐 아니냐’에 대한 사실 여부였다.

그래, 김미화가 손잡고 정치에 참여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설이라 치더라도, 또 친노면 어떻고 친노가 아니면 어떻다는 거냐! 그런데 법정에서 막상 진실게임에 들어가면 이게 단순치가 않다. ㄸ신문은 자신들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오래 전에 있었던 한 행사를 끄집어내기에 이르렀고 그 행사가 바로 ‘출발 20~30대의 물결문화제’였던 것이다. 그 행사에 출연했던 많은 연예인 중 노무현 전 의원과 화장실 세트에서 코미디를 길~게 했다는 이유로 친노라고? 이게 말이 되냐?
- ‘삼순이 블루스와 세 번의 고소미’ 중에서 “김미화씨한테 단도직입적으로 내가 한 가지만 물읍시다!
미화씨는 좌요? 우요?”
“……….”
한마디로 벙 쪘다. 이게 무슨 황당 시츄에이션?
이 분 참 깃털처럼 가벼운 양반이라는 생각을 하며 답했다.
“연기자가 좌가 어디 있고 우가 어디 있습니까? 좌도 우도 아니죠!”
놓칠세라 그의 입에서 다시 흘러나온 말은 더욱 가관.
“그렇다면 우쪽으로 좀 더 붙으시고…….”
‘……. 그래, 진심어린 충고 고맙수!’
- ‘높은 분들 깊은 뜻을 내가 어찌 알랴’ 중에서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MBC 사장과 맞닥뜨린 적이 있다. 좁은 공간에 수행비서 두 명, 환경미화원 한 분, 3층에서 내린 슬리퍼 신은 직원 한 명이 전부였다. 사장에게 인사를 했더니 내게 말을 던졌다. “김미화씨, 지금 라디오본부가 시끄럽던데 시사프로 그만하시고 다른 프로그램을 맡아주세요. MBC에 좋은 프로 많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이건 고르세요. 정말 좋은 프로그램 많습니다.” 그 말에 나는 “사장님, 시사프로는 안 되는 이유가 뭔가요?” 하고 물었고, 순간 문이 열려 모두 내렸다. 그는 내 질문은 못 들은 체 하고 좋은 프로 많으니 골라잡으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 ‘사장님, 시사프로만 안 되는 이유가 뭔가요?’ 중에서

언론이 권력과 협착하고 재벌과 어깨동무하면 나라 썩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 정도는 나도 이제 안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를 떠올리며 남의 나라 일 같이 느껴지지 않는 건 왜일까? 부정축재 재산가, 타락한 정치인으로 알려진 그는 총리를 세 번이나 역임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탈리아의 주요 언론사를 아예 소유해 국민의 귀와 눈을 속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까?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는 대놓고 언론사를 소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낙하산 사장들을 투입해 언론을 장악하고 있으니 결과적으론 같은 꼴이 아닐까 싶다.
- ‘김미화의 눈물’ 중에서

2012년 4월 11일, 19대 총선 당일. 투표율이 높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꼭두새벽에 일어나 한복을 차려 입고 제일 먼저 투표장으로 향했다. 투표를 마치고 나와 이마에 일자눈썹을 붙이고 ‘닥치고 투표!!’ 방망이를 든 순악질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오늘,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땅을 치고 후회한다! 어여 투표하구 인증샷 보내 봐봐!”내가 아침 일찍 일자눈썹을 붙이고 한복을 입고 투표독려를 한 것은 이 세상이 하루라도 빨리 좋은 세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국민의 입을 막는 정권은 이제 그만 만났으면 좋겠다. 말이 통하는 건 고사하고, 말은 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그야말로 너무도 당연하고 소박한 바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 ‘닥치고 투표’ 중에서

거처를 이곳으로 옮긴 지 7년이 흐른 지금, 나에겐, 아니 우리 부부에겐 새로운 꿈이 생겼다. 남편과 오래 전부터 이름지어 놓은 ‘순악질 프로젝트’ 계획을 확장시켜 나가다 보면 끝이 없다. 이곳은 우리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고 우리 동네에 놀러오는 사람들의 사랑방이 될 것이다.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과 천천히 걸으면서 아름다운 꽃길을 선물하고 싶다. 자연 한가운데서 샤샤샤 바람에 누웠다 일어나는 억새 소리 들어가며 함께 즐길 날이 머지않았다. 순악질 프로젝트가 완성될 그날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나는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