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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야스쿠니 방화' 중국인 일본 인도 거절

[재경일보 이영진 기자] 법원이 일본 야스쿠니(靖國) 신사 방화 혐의를 받고 있는 중국인 류창(劉强·38)을 일본에 인도하지 않기로 3일 결정했다. 이에 따라 류창은 즉시 석방되며, 중국으로 자진 출국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법원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는 외교 경로로 유감을 표시했고 중국은 공식적으로 환영하고 나섰다.

류창에 대한 범죄인 인도 재판을 진행해온 서울고법 형사20부(황한식 수석부장판사)는 이날 "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류창을 일본으로 인도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치질서와 헌법이념뿐만 아니라 대다수 문명국가의 보편적 가치를 부인하는 것"이라며 이 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범행의 대상인 야스쿠니 신사가 법률상 종교단체 재산이기는 하지만 일본의 대외 침략전쟁을 주도한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정치적 상징성이 있는 곳으로 평가된다"고 전제했다.

이어 "류창의 범행은 정치적인 대의를 위해 행해진 것으로 범행과 정치적 목적 사이의 유기적 관련성이 인정된다"며 `정치적 범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판단의 기준으로 범행의 동기, 목적, 대상의 상징성, 범행과 정치적 목적의 유기적 관련성, 법적·사실적 성격, 잔학성 등 6가지를 제시했다. 한국 법원이 정치적 범죄의 판단 기준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인명피해가 없는 점, 물적 피해가 크지 않은 점 등에 비춰 류창의 범죄를 중대하고 심각하며 잔학한 반인륜적 범죄로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날 결정의 근거가 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범죄인 인도조약' 3조는 "피청구국이 인도 청구되는 범죄를 정치적 범죄로 판단할 경우 범죄인 인도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류창은 작년 1월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진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는 수사과정에서 2011년 12월 야스쿠니 신사에 화염병을 던진 것도 자신이라고 밝혔으며, 일본 당국은 지난해 5월 외교 경로를 통해 류창의 신병을 넘겨달라고 요청했다. 중국 당국은 류창을 정치범으로 인정해 자국으로 송환해달라고 공식 요청하면서 중·일 양국 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법무부가 범죄인 인도심사 청구를 결정하면서 서울고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범죄가 소명되고 국내 주거가 일정치 않아 신병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한 후 그동안 세 차례 심문했다.

류창은 심문에서 "위안부 할머니들과 한·중 국민의 존엄성을 위해 범행했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반인륜적 행동에 저항하려 했다"는 등 줄곧 자신이 정치범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외교부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은 이날 서울고등법원의 결정에 대한 논평을 요구받자 "중국 측은 이번 결과를 환영한다"며 류창이 적절한 준비를 거쳐 수일 내로 중국으로 귀국할 것이라고 밝혔다.

화 대변인은 "중국 정부는 중국 국민의 안전과 합법적인 권리 보호를 크게 중시한다"며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가 구금 중인 류창을 여러 차례 면회하고 책무 범위에서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날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한국 측에 "법원 결정은 유감"이라는 뜻을 전달했다고 요미우리신문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교도통신도 일본 정부가 한국 법원의 결정에 항의하고 류씨의 인도를 재차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지지통신은 일본 정부 관계자가 "(류씨가) 정치범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며 "일본의 법적 관심은 정치범이 아니라 방화에 대한 것"이라며 한국 법원의 결정에 불만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요미우리신문은 "이번 결정이 박근혜씨의 대통령 취임 전이어서 앞으로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일본 정부 분위기를 전했다.

요미우리는 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다음달 박근혜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에 맞춰 한일관계 개선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거론한 뒤 일본 정부 고위관계자도 "(법원 결정을) 심각한 사태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