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양준식 기자] 지난해 우리나라 국가 신용등급이 격상된데다 선진국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진 영향으로 시중은행들이 국외채권을 발행할 때마다 금리 최저치 기록이 경신되고 있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최근 300억엔 규모의 사무라이 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금리는 역대 시중은행의 사무라이 채권 가운데 가장 낮은 0.77%(2년물), 0.87%(3년물)로, 지난해의 절반 수준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일본의 양적완화가 시작돼 유동성이 풍부해졌으나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우리은행이 사무라이채권을 발행해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았다"고 말했다.
하나은행도 최근 3년 만기 미화 5억달러 규모의 글로벌 채권을 발행했다. 금리는 미국 3년물 국채에 1.05%를 가산한 수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시중은행이 발행한 3년 만기 글로벌 채권 가운데 최저치다.
국민은행이 이달 8일 3억달러 규모의 달러화 채권을 발행할 때 최저금리 수준과 같지만, 금액은 2억달러 더 많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번에 채권을 발행했을 때 한국물에 늘 들어오던 투자자들이 아닌 처음 보는 투자자들이 있었다"며 "국가 신용등급 상향 조정 이후 국외 투자자들이 국채물에 투자한 이후 시중은행물로 들어오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23일 뉴욕 채권시장에서 3억5000만달러 규모의 글로벌 채권을 발행하면서 최저금리를 경신했다. 미국 국채 수익률에 127.5베이시스포인트(1bp=0.01%)가 가산된 수준이다.
앞서 NH농협은행이 지난해 9월 5억달러 규모의 국외채권을 발행할 때 미국 국채 수익률에 165bp 가산된 금리를 적용받아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국내 최저금리를 기록했었는데, 신한은행이 이 기록을 깬 것이다.
지난해 무디스(8월27일), 피치(9월6일), 스탠더드앤드푸어스(9월14일) 등 3대 국제 신용평가사가 우리나라의 국가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한 이후 외환은행이 그해 9월21일 달러 표시 국외채권 가운데 가장 낮은 금리로 3년 만기 국외채권을 발행하는 등 최저금리 기록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대외건전성을 바라보는 국외 투자자의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주요 선진국의 양적완화 기조 속에 세계 자본시장의 유동성이 풍부해진 점과 유럽 경제상황이 '바닥'을 찍고 회복돼간다는 기대감도 금리 하향 행진에 한몫했다.
금융권은 올해 국외시장에서 한국물이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 것으로 내다봤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올해 5월 미국의 재정삭감 합의가 이루어지고 양적완화가 계속되고 유럽 경제가 계속 회복 조짐을 보인다면 좋은 분위기(발행여건)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세계 경제의 회복세가 아직 미약해 미국의 양적완화 조치가 조기 종료되거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 외화채권 발행 여건이 나빠질 가능성도 있다.
한편, 시중은행들은 시장 상황이 좋은데도 향후 채권발행에는 유보 견해를 보이고 있다.
추가 발행 계획을 세운 곳이 아직 없는 가운데 농협은행만 예년 수준인 10억달러 규모로 발행할 방침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가격 면에서 좋지만 자금이 많은데 발행하면 운용할 곳이 없어진다"며 "외화유동성 상황을 봐 가면서 탄력적으로 발행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