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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에 '3월 감원 광풍' 엄습… '사내실직·권고사직' 등 퇴사 압력

[재경일보 양진석 기자] 유례없는 불황을 맞은 증권업계에서 '사내실직', '권고사직' 등 직원들에게 조기퇴직을 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상장사들도 실적 비상에 걸려 경제 전반에 걸쳐 해고 공포가 커지고 있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작년 말 모 대형 증권사는 직원 100여명을 무더기로 권고사직 처리했다. 또 다른 증권사는 최근 본사 직원 일부를 지방 지점으로 발령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관계자는 "관리직에서 영업직으로의 전환은 무척 견디기 힘든 일"이라며 "버티지 못하는 사람은 회사를 나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영업직 직원을 연고가 없는 지방으로 발령해 퇴직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한 관계자는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는 당연히 성과를 내기가 힘들다"면서 "그러면 월급으로 기본급 정도 또는 100만원 남짓만 받는데, 이는 사실상 회사를 그만두고 나가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예 회사측이 '지방 발령을 받겠느냐 아니면 월급 3개월치를 받고 권고사직을 수용하겠느냐'고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간부급 직원의 보직을 박탈하는 사례도 잦다"면서 "경기 악화로 이런 편법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에는 업계 1위인 대우증권이 희망퇴직자를 신청받았다.

업계 '자기자본 1위', '당기순이익 1위'인 대우증권은 대우증권은 지난달 차·과장급 7년차 이상과 부장 1년차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신청받았다.

앞서 통합법인을 출범한 한화투자증권도 260여명의 희망퇴직을 완료했다.

1위 회사가 공개적으로 감원을 진행하자 다른 증권사들도 줄줄이 희망퇴직에 나설 설 수 있다는 전망에 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한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 "대형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구조조정 칼바람이 본격화됐다는 뜻"이라며 "대형사의 눈치를 보던 중소형사들도 감원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최근 증권가에서 일반적인 추세로 자리잡은 지점 통폐합도 조기퇴직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작년 9월 말 기준으로 협회에 등록된 62개 증권사의 지점 수는 1681개로 전년 말(1778개)보다 97개나 줄었다.

지점 수를 가장 많이 줄인 곳은 미래에셋증권으로 39곳이 감소했고, 동양증권도 20곳을 없앴다.

지난해 한화증권과 한화투자증권(옛 푸르덴셜투자증권)이 합병하면서 지점이 119개에서 103곳으로 16개가 줄었다.

이 밖에 메리츠종합금융증권(11개), 한국투자증권(6개), 대신증권(5개)도 지점을 축소했다.

작년 말에도 수익성 악화를 타개하기 위해 증권사들의 지점 축소가 이어져 현대증권은 작년 10월에 5개 지점을 통폐합했고, 하나대투증권(12개), 유진투자증권(4개)도 지점을 줄였다.

지점 수가 대폭 감소한 것은 극심한 업황 부진에 시달린 증권사들이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점을 통폐합하면 인건비와 부동산 임대료 등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그러나 지점 통폐합으로 인해 보직 수가 감소하면서 상당수의 직원들이 '사내실직' 상태가 됐다. 사내 실직은 회사를 다니고 있으나 실직과 다름없이 특정된 보직이 없는 경우를 말한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지점 통폐합이 잦으면 퇴사 압력도 높아진다"며 "두 곳이었던 보직이 한 곳으로 줄어들면서 이른바 '사내실직' 상태가 되거나 퇴사를 결심하는 직원들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증권가의 구조조정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업황이 개선될 조짐이 없기 때문이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작년 7∼9월까지는 주식시장이 안 좋아도 채권 금리가 내렸고, 정책금리도 인하되는 추세여서 채권운용 수익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10∼12월에는 수익사정이 어려웠고 올해 1월도 개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소매영업, 투자은행영업 등 부문을 따질 것 없이 고루 안 좋고 특히 중소형사의 3분기 실적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면서 "이번 4분기가 끝나는 3월께 다수 증권사가 인력관련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월 결산법인 중 연결실적을 제출한 증권사 17곳의 작년 4~9월 영업이익은 4540억원으로 전년 동기(7672억원)보다 40.8% 줄었고, 같은 기간 국내 62개 증권사의 임직원수는 4만3091명으로 729명이 감소했다.

이에 따라 업계 관계자들은 2012년 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가 끝나는 3월께 '인력 감원 광풍'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사의 또 다른 관계자는 "계약직 비율이 높은 증권사 리서치센터에도 3월부터 광풍이 불 것"이라면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 성과를 내려 하지만 분위기가 정말 좋지 않다"고 전했다.

금융투자업계의 이런 움직임은 은행, 보험, 신용카드, 저축은행 등 금융업계 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조선, 해운, 건설 등은 물론, '엔저ㆍ원고'에 취약한 대기업과 하청 중소업체 등이 직격타를 맞으면서 감원압력은 빠르게 퍼질 수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까지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을 발표한 주요 상장사 37곳 중 51%(19곳)가 시장의 기대치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어닝 쇼크'를 나타냈다.

어닝 쇼크와 어닝 서프라이즈는 증권사가 내놓은 실적 전망치와 기업의 실제 영업이익 간 괴리율이 10% 이상인 경우를 뜻한다.

대형 상장사에 이어 중소형 상장사도 조만간 실적 발표가 이어질 예정이다. 하지만 이익 전망이 밝지 않다.

실적 발표를 앞둔 주요 72개 기업 중 지난 한 달 동안 영업이익 전망치가 하향 조정된 곳이 74%(53곳)에 이르렀다. 이익 전망이 조금이라도 상승한 곳은 22%(16곳)에 불과했다.

최근 72개 기업 전체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7조7천205억원으로 작년 말 전망치 8조56억원보다 4% 감소한 상태다. 4분기 이익전망치는 지속적인 하향조정 추세를 보이고 있다.

업종별로는 유틸리티의 영업이익이 작년 말 전망치보다 5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고 소재(-17%), 필수소비재(-10%), 에너지(-9%)의 전망치도 크게 하락했다. 통신서비스만이 한 달 새 전망치가 25% 상승했다.

감원은 소비 위축→투자 축소→생산 감소→소득 감소→소비 더욱 위축 등의 경로를 거치면서 경제를 더욱 짓누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