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공정위, `친족기업' 일감 몰아주기도 공시 추진

[재경일보 양진석 기자] `숨겨진 일감 몰아주기'로 불리는 친족기업 간 편법 거래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사주 일가 기업끼리 이뤄지는 은밀한 편법 거래가 만연하다는 판단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총수의 친족기업 간 거래 공시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족기업 간 일감 몰아주기에는 대기업이 창업 1세대에서 분사한 친인척 보유의 기업과 거래함으로써 법망을 교묘하게 피하는 수법이 주로 활용됐는데, 한 지붕 밑에 있는 계열사 간 거래에서 한 걸음 더 진화한 편법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5일 "총수의 친인척이 사주로 있는 친족기업과 이뤄지는 거래 현황을 대기업집단이 공시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감 몰아주기 방식의 친족기업 간 대규모 거래는 쉽게 드러나지 않아 공시 의무화 방안을 검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친족기업 간 거래 공시를 의무화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법을 고쳐야 한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와 비상장사 관련 공시를 의무화한 공정거래법 제11조가 개정 대상이다.

현행 공정거래법 제11조 2항은 대기업집단 계열사 사이에 이뤄지는 상품·용역 거래나 주식·부동산·자금 거래 등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규정했다.

제11조 3항은 비상장 계열사의 대주주 주식보유·변동 현황, 자산이나 주식의 취득·증여·담보 제공 등을 공시토록 한다.

공정위는 이 두 조항을 근거로 매년 대기업집단 내부에서 `일감 몰아주기'가 어떻게, 어느 규모로 이뤄지는지 치밀하게 점검해 실태를 발표한다.

여기에 친족기업 간 거래까지 공시 대상이 되면 총수 주도로 이뤄지는 재벌그룹 일감 몰아주기의 전모가 드러날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상속·증여세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계열사 등 특수관계법인과의 거래 비중이 30%를 넘는 기업은 변칙 증여를 받은 것으로 간주, 증여세를 내게 하겠다고 밝혔다.

재벌들은 이를 회피하려고 친족기업과 거래하는 사례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 수법으로는 그룹 계열사 광고물량의 60%가량 수주하던 계열사 A사가 친족기업인 B사에 물량의 절반을 넘겨주고, 대신 B사 물량을 받아오는 방식이 주로 활용된다.

이렇게 하면 A사는 계열사 물량 비중을 30% 이하로 낮춰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피할 수 있게 된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 현대자동차는 정비 가맹점 `블루핸즈'에 매장 리뉴얼을 강요한 탓에 지난해 10월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다.

리뉴얼 과정에서 현대차는 블루핸즈 가맹점에 특정업체의 책상, 의자, 소파 등을 사서 쓰도록 했다.

그 특정업체는 바로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조카이자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사촌인 정지선씨가 회장으로 있는 현대백화점그룹의 계열사 리바트였다.

그러나 공정위는 "리바트가 현대차그룹 계열사가 아니므로 일감 몰아주기로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같은 현대차와 리바트의 거래는 친족기업 간 일감 몰아주기의 대표 사례로, 창업주에서 2세, 3세, 4세로 이어지면서 재벌그룹은 수많은 형제, 삼촌, 사촌 등 친인척을 거느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들이 경영하는 기업은 해당 재벌그룹과 직접적인 지분 관계가 없어 계열사로 편입되지 않은 `친족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친족기업 일감몰아주기의 심각성은 친족기업이 불공정거래를 통해 모그룹의 일감을 하나둘씩 나눠갖다 보면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의 먹거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LG그룹의 친족기업인 희성전자는 모그룹의 지원을 받은 친족기업이 급성장한 대표적인 사례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두 동생인 구본능씨와 구본식씨가 지분 70%가량을 보유한 희성전자는 2000년 매출이 684억원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후 그룹의 전폭 지원에 힘입어 LCD 패널의 핵심 부품인 BLU(백라이트유닛)를 LG디스플레이에 대량 납품하면서 급성장했다.

2011년 매출은 1조2800억원, 국외 계열사를 포함한 연결기준매출은 무려 3조6000억원에 달해 10여 년 만에 매출이 수십 배나 늘어났다.

친족기업 일감 몰아주기는 그룹 내부거래 비중을 줄이려 할 때도 긴요하게 쓰인다.

현대차그룹 계열 물류기업인 현대글로비스는 매출에서 그룹 내부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1년 기준 45.2%에 달해 일감 몰아주기 과세 대상(내부거래 비중 30% 이상)에 해당한다.

그런데 글로비스는 최근 현대중공업의 자회사인 현대오일뱅크와 1조1000원 규모의 원유 장기운송계약을 체결, 그룹 내부거래 비중을 줄이려는 글로비스에는 상당한 도움이 됐다.

또 지난해 휴대전화 부품 제조·유통업체인 영보엔지니어링㈜이 삼성그룹의 친족기업으로 특혜를 받고 있다며 부당지원 의혹이 경제개혁연대에 의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영보엔지니어링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조카인 김상용씨가 지분 29.6%, 김상용씨의 모친인 이순희씨가 지분 13.0%를 보유한 기업이다.

이러한 친족기업 간 일감 몰아주기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룹 계열사 간 거래와 같은 의무공시 대상이 아니어서 매우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위 공시가 의무화하면 그 실상을 낱낱이 알 수 있게 된다.

공정위가 친족기업 간 거래의 공시를 의무화하려는 것은 이런 악습을 근절하고 일감 몰아주기의 실상을 더욱 자세히 파악해 강력히 제재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공정위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를 올해부터 강력히 제재하면 대기업들의 회피 `꼼수'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며 "친족기업 간 거래 공시 의무화는 이런 부작용을 들춰내는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친족기업 간 일감 몰아주기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매우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것이 사실이다"며 "공정거래법을 고쳐 제재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경제민주화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