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응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보유자로 도편수 최원식 - 조원재 - 이광규로 이어지는 궁궐건축 기문技門의 계승자이다. 열일곱의 나이에 목수의 길로 들어선 그는 1960년 한국 궁궐목수의 적통을 이어오던 이광규를 스승으로모시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1962년 숭례문 해체수리 공사 때 만난 이광규의 스승 조원재와의 만남은 그를 또 한번 큰 목수로 거듭나게 했다. 조원재는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전통건축 계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궁궐 목수로 구한말 도편수 최원식을 잇는 대목장이다. 신응수는 1970년 불국사 복원 공사 때 처음 부편수를 맡고, 1975년 수원화성 장안문 복원공사 시 처음으로 도편수를 맡은 이후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 광화문, 숭례문 등 궁궐 수리복원의 도편수를 두루 맡아 한국 전통건축 복원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불린다. 1991년 스승 이광규의 뒤를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됐다. 신응수는 몇 백년 후 궁궐건축에 큰 재목으로 쓰일 수 있도록 미리 소나무를 키우고,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건축 기법을 정리해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목장이다.
궁궐목수 기문의 계보
19세기말 고종高宗(1852 ~ 1919)이 즉위하고 경복궁이 중건됐다. 그러나 당시의 공사전말을 기록한 도감의궤가 남아있지 않아 당시 동원됐던 궁궐목수의 실체는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상량문을 비롯한 편린片鱗의 기록과 목수 사이에서 내려오는 구전口傳을 통해 광화문 도편수 김수연金守淵과 근정전 도편수 김치영金致英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경운궁 중화전 신축공사와 경운궁 중건공사는 대한제국大韓帝國(1897~1910) 시기에 마지막으로 시행됐던 궁궐공사였다. 1902년 완공된 경운궁 중화전 신축공사에서 부편수로 참여했던 홍순모洪淳謨는 이후 경운궁 중건공사(1904 ~ 1906) 당시 도편수의 직책에 올라 궁궐공사의 총책임을 맡았다. 구전에서 ‘홍편수’라 전해졌던 인물이 바로 홍순모이다.
한수준韓壽俊과 최백연崔伯淵은 홍순모와 함께 경운궁 공사에 참여한 목수였다. 한수준은 1901년 경운궁 진전 중건시 진연, 진찬에 사용되는 보계補階를 제작한 편수였으며 최백연은 1901년 경운궁 진전 중건에서 공답편수를 맡았고 1904년 경운궁 중건에서는 당가唐家편수로 활동했다.
최원식은 궁궐목수 홍순모, 한수준, 최백연의 뒤를 잇는 목수이다. 구전에 의하면 궁궐목수 최원식은 최백연의 조카로 1906년 경운궁 중화전 중건과 1917년 창덕궁 대조전 중건에 참여했다고 한다.
최원식의 제자 조원재(1903 ~ 1976)는 스승 최원식과 함께 조계사 및 봉원사 법당을 지었으며 동양건축사東洋建築社와 한도실업을 설립한 인물이다. 목수 조원재는 1956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고건축 수리공사였던 강진 무위사 수리공사를 진행했고 1962년에는 숭례문 해체 수리 공사에서 도편수를 맡았다.
조원재의 뒤를 잇는 목수는 이광규(1918 ~ 1985)이다. 이광규는 1962년 숭례문 해체수리공사에서 부편수를 맡은 이후 불국사와 남한산성 복원에서 도편수로 활약했으며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됐다.
신응수는 이광규를 계승해 우리나라 궁궐건축의 맥을 잇는 목수이다. 199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된 신응수는 1991년 경복궁 침전권역 복원공사를 시작으로 지난 20년간 경복궁 복원에 매진해 왔다. 전통목조건축의 기법은 도제교육을 통해 기문技門 내에서 엄격히 관리, 전승되고 있다. 신응수는 스승으로부터 배웠던 궁궐건출의 기법과 수십 년 동안 궁궐수리 공사에서 터득한 기술을 정리해 제자들에게 전수해 오고 있다. 향후 궁궐목수의 계보는 신응수와 함께 궁궐건축 복원의 역사를 써내려온 문기현 부편수가 계승해 나갈 것이다.
자료제공_수원화성박물관(담당 학예팀 오선화 031.228.4209)
에디터 _ 박광윤 기자 pky@imwoo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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