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역사 <52>
레드클립 식물원 전경 |
호주 브리즈번행 대한항공 여객기를 타고 인천 공항을 오후 7시25분에 출발하면 비행기는 그 다음날 오전 6시30분 퀸슬랜드 주(州)의 주도(州都)인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한다. 비행기가 브리즈번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고도를 낮추며, 호주의 동해안을 따라서 에머랄드 빛을 반사하는 바다 위를 날고 있을 때 오른 쪽에 펼쳐진 평평한 해안을 내려다 보고 있으면 강렬한 남국(南國)의 아침 햇살 속에 해안 앞으로 튀어나온 조그만 반도가 보인다. 평평한 반도 주위는 푸른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반도 안에 있는 넓은 땅을 이용하여 시원하게 구획된 도로 사이에 평화로운 집들이 정원 사이에 들어차 있는 것이 명확하게 보인다. 바로 이곳이 레드클립(Redcliffe) 시(市)이다. 레드클립을 오른쪽으로 내려 보면서 에어버스 A330-300 여객기는 그 육중한 몸체를, 금새 해안에 시원하게 뻗어 있는 브리즈번 공항의 활주로에 사뿐히 내린다.
브리즈번 공항에서 신호등이 거의 없는 해안도로를 따라서 북쪽으로 15km를 달리면(약 10분) 브리즈번 북부 해안과 레드클립 반도를 이어주는 긴 다리(연육교)가 나타난다. 이 다리를 지나면 도로는 유칼리 나무가 많은 숲 사이를 지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숲 오른편에 보이는 금빛 모래사장이 바로 1799년 7월17일,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영국 해군의 플린더스(Matthew Flinders) 중령이 상륙한 곳으로서 플린더스는 이 곳에 ‘레드클립 포인트’라는 이름을 붙였고 오늘날에는 우디포인트(Woody Point)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어있다. ‘오스트랄(Austral)’이란 뜻은 ‘남쪽의’란 뜻인데 호주를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 라고 이름 지은 사람이 바로 군인이며 탐험가인 플린더스이다. 우리는 캡틴 쿡이 호주를 처음 발견하였다고 알고 있으나 사실은 캡틴 쿡이 호주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여러 명의 유럽 탐험가가 호주를 발견하였었다. 캡틴 쿡 역시 영국 해군 장교(하와이에서 사망시 계급은 대령)로서 군함을 지휘하면서 오대양 곳곳을 탐험하였으므로 우리가 ‘쿡 선장’(선장은 민간인 선박 책임자를 가리킨다)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그는 군인이므로 우리말로는 ‘쿡 함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른 표현이고 군대, 특히 해군을 사랑하였던 그에 대한 예의이다. 쿡 함장은 오늘날 시드니 근처만 방문하였을 뿐 큰 호주 대륙의 해안을 탐험하지는 못하였으나 그의 해군 후배인 플린더스는 호주 대륙의 긴 해안선을 일주하고 ‘오스트레일리아’라는 항해기를 발간하였다. 그래서 오늘날 호주 곳곳에는 쿡 함장의 이름을 기념하는 도로, 동상, 지형지물보다 플린더스의 이름이 붙여져 있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예를 들자면 플린더스 산맥, 플린더스 대학, 플린더스 병원, 플린더스 가(街) 등 무수하다. 레드클립 시내에 있는 식물원 근처에도 물론 플린더스의 기념탑이 서 있다.
시내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식물원은 원래 소를 기르는 목장이었으나 1995년, 시에서 구입하여 호주 자생종 식물을 주요 식물로 한 식물원을 만드는 구상을 갖고 5년간 준비를 해 2000년에 개원(開園)하여 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특히 면적 6ha(약 2만평) 크기의 이 식물원에는 레드클립 시(市)가 포함되어 있는 남부 퀸슬랜드주의 모레톤만(Moreton Bay)지역이 원산인 열대우림 수종 250여종이 식재되어 있다. 이 가운데 주요 수종은 호주 밖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으로서 Black Bean(또는 Moreton Bay Chestnut; 학명 Leguminosae Castanospermum australe), Bolly Gum(Lauraceae Litsea reticulata), Flint Wood(Flacourtiaceae Mycteria spp.) 등이다. 필자가 이 식물원을 방문한 목적은 호주의 타스매니아 섬이 원산지로서 호주 동남부에 생육하고 있는 ‘호주 블랙우드(Australian Blackwood; Leguminosae Acacia melanoxylon)’ 수목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필자가 식물원에 도착하여 식물원 관리소 옆에 있는 조그만 묘목장(苗木場)에서 작업하고 있는 관리 직원을 만나 방문목적을 이야기하자, 이 직원은 하던 일을 중지하고 식물원 안을 안내하여 필자가 찾고 있던 수목을 찾아 주었다. 식물원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이들 나무들을 찾아보고 나오는데 그는 필자에게 호주를 대표하는 꽃 가운데 하나인 뱅크시아(Banksia; Proteaceae Banksia aemula)를 보았냐고 하면서 높이가 사람 키 만하고 옆으로 펴진 화사한 뱅크시아 꽃이 있는 곳을 안내해 보여주기도 했다. 이 꽃은 일반명(一般名)과 학명의 속(屬)에 쿡 함장의 탐험을 지원해 준 영국인 뱅크(Joseph Banks) 경(卿)이 자기 이름을 붙인 꽃으로서 호주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꽃이다. 호주 원주민들은 이 꽃을 왈룸(Wallum)이라고 부르는 데 퀸슬랜드 주의 동남부 해안지역에서 봄과 이른 여름에 만발한다. 식물원 안에는 500 여종의 각종 약초(藥草)도 식재돼 있는데 지역 주민 가운데 약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원 봉사자로 매주 월요일 마다 식물원에 와서 약초 지역을 관리해 주고 있다고 한다. 식물원 한 가운데에는 제법 큰 연못도 있으나 필자가 방문했을 때 필자 외에 방문객이 아무도 없어서 직원이 시간을 갖고 충분한 설명을 하면서 운치 있는 연못 주변을 느긋하게 안내해 주었다. 식물원 안의 한 곳에는, 원래 목장이었던 곳이므로 당시의 역사를 후세에 남겨주기 위해 목장에서 젖소 젖을 짜던 시설과 목장의 담장 등 과거의 흔적을 보여주는 시설물을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 연결되는 통로는 좁고 구불구불하여 혼자 찾아가기는 어려워 보였는데, 필자가 방문하기 바로 얼마 전에 시설 설치작업이 끝났다고 한다.
탐험가 플린더스가 상륙한 해안에서 불과 2km 떨어진 내륙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중 개방하는 레드클립 식물원은 지역 학생들의 자연과학 교육, 파티, 결혼식의 장소로서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입장료는 호주의 다른 식물원들처럼 무료이다.
권주혁
동원산업 상임고문·강원대 산림환경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 농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이건산업에 입사해 이건산업(솔로몬사업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파푸아뉴기니 열대 산림대학을 수료했으며, 대규모 조림에 대한 공로로
솔로몬군도 십자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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