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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개발사업 결국 파국… 코레일, 청산 결정

[재경일보 김진수 기자]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불렸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부동산 경기침체로 난항에 빠진 이후 1·2대 주주 간 다툼, 정부와 서울시의 소극적인 태도 등이 겹치면서 결국 6년만에 무산되게 됐다.

코레일이 내부 이사회를 통해 청산 절차 도입을 결정한 데 따른 것으로, 건설업계와 지역 사회에 큰 후폭풍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코레일은 지난 2011년 7월 랜드마크빌딩을 선매입하는 등 답보 상태에 빠진 사업을 회생하기 위한 방안을 추진했지만 사업계획 변경 등을 둘러싼 민간 출자사들과의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자 청산을 결의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코레일 주도의 정상화 방안에 반대하는 민간 출자사들이 전격적으로 백지투항할 경우 청산절차 돌입을 재논의할 여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토지주이자 최대 주주인 코레일은 8일 서울 중구 코레일 서울사옥에서 내부 이사회를 열고 이사 13명의 전원 찬성으로 이 사업의 토지매매계약과 사업협약 해제를 결의했다고 밝혔다.

코레일 관계자는 "지난달 디폴트 이후 사회·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상화 방안을 제안했지만 롯데관광개발, 삼성물산 등 민간 출자사와 SH공사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며 "협약이행보증금 청구를 위한 해제 절차를 4월 말까지 진행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코레일은 9일 사업시행사인 드림허브 프로젝트금융회사(이하 드림허브)에 반납해야 할 토지반환대금 2조4000억원 중 5400억원을 우선 반납하기로 했다.

이 돈을 반환하면 토지매매계약의 해지권이 발동돼 드림허브는 사업시행사 자격을 잃고 사업 청산 절차에 따르는 수밖에 없다.

코레일은 오는 9월까지 나머지 땅값을 모두 갚아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의 소유권을 되찾고, 이달 말까지 드림허브에 협약이행보증금 2400억원을 청구할 계획이다.

최악의 사태를 피하지 못한 것은 드림허브가 지난달 12일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의 이자 52억원을 내지 못해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진 이후 코레일에서 제안한 정상화 방안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상화 방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특별 합의서에 대한 출자사 동의율이 55.7%(지분 기준)에 그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는 특별결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2대 주주인 롯데관광개발 등은 코레일 주도의 정상화 방안을 거부하고 민간 주도의 새 정상화 방안을 역제안할 방침이었지만 코레일의 '강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코레일에서 토지반환대금을 입금하기 전까지 막판 극적인 타결이 이뤄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사회 결의사항을 하루만에 뒤집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이번 코레일의 결정에 롯데관광개발 등 민간 출자사들이 강하게 반발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여 상당 기간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번 청산 결정으로 인해 코레일이 드림허브에 투자한 지분(25%) 2500억원은 전액 손실이 예상된다. 코레일을 제외한 나머지 29개 출자사들이 보유한 지분(75%) 7500억원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용산개발사업에는 삼성물산과 GS건설, 현대산업개발, 금호산업 등 총 17개 건설사들이 2000억원을 투자했다.

KB자산관리, 푸르덴셜, 삼성생명, 우리은행, 삼성화재 등 재무적투자자(FI)들 역시 출자액 2365억원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전략적 투자자(SI)인 롯데관광개발(1510억원), 미래에셋맵스(490억원), 삼성SDS(300억원), KT&G(150억원), CJ(100억원), 호텔신라(95억원) 등도 2645억원을 출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에는 국민연금이 부동산 펀드를 통해 투자한 1250억원도 포함돼 있다.

국민연금은 KB자산운용의 'KB웰리안NP사모부동산투자회사 1호'에 1000억원,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래에셋맵스프런티어부동산사모투자회사 23호'에 250억원을 각각 투자했다.

용산개발에 투자하기 위해 만들어진 490억원 규모의 '미래에셋맵스프런티어부동산사모투자회사 23호'에는 미래에셋그룹도 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부동산 펀드는 이번 결정으로 투자금을 회수하기 힘들게 됐다.

한 출자사 관계자는 "결국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 만큼 이번 사태의 책임 소재를 두고 투자금 회수를 위한 대규모 소송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부이촌동 주민들도 용산개발 실패에 따른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집단 소송을 벌일 예정이다.

다만 코레일은 자사 주도의 정상화 방안에 나머지 민간 출자사들이 전격 동의할 경우 토지매매계약 해지 절차를 중단하고 다시 논의할 길을 열어놓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코레일의 한 관계자는 "드림허브에 협약이행보증금을 청구하는 데 2∼3일 말미가 있어 이 기간 안에 출자사들이 완전히 동의한다면 회생의 여지가 생긴다"면서도 "하지만 드림허브 이사회를 열고 절차를 제대로 밟으려면 2∼3일 안에 합의를 이루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